베트남 전적지여행의 체험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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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세월이 훌쩍 흘러
아련한 그리움이 있는 땅
내 마음의 그리움을 찾아 떠난다
설레임에 가슴벅찬 베트남 전적지여행
       
 
베트남역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7-02-03 (토)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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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0년만의 상봉 ”



♣ 7백년만의 상봉

3백여년전 숙종연간에 있었던 일이다. 제주도 사람 24명이 탄 배가 폭풍으로 표류 12일만에 안남- 지금의 월남땅에 표착하여 그곳 고관으로부터 신문을 받았다. 조선 사람들임을 확인하자 대뜸 언성을 높여 말하기를 우리 왕자가 조선땅에 표류했을때 살해당했으니 너희들도 살아돌아갈 생각을 말라고 공갈치는 것이었다. 이에 서로 붙들고 방성통곡을 했다는 기록이 정동유의 주영편 에 나온다.

이 기록은 7백년전 안남 왕자가 고려땅에 표류해 왔다는 사실을 월남 사람들이 널리 알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고려에서 극진히 우대받은 사실이 왜곡되어 살해당한 것으로 와전되고 있었음을 알게해 준다.

그 곡절을 이해하는데 월남 역사를 잠시 되뇌볼 필요가 있다. 우리 역사에 이씨조선이 있듯이 월남에도 이씨월남이 있었다. 그 이씨월남의 8대왕인 혜종이 반란으로 피난갔다가 미모인 어부의 딸 진씨에게 반해 후궁으로 들인 것이 외척세도의 씨앗을 뿌렸고, 그 후궁의 오빠들이 결탁, 이씨를 몰아내고 진씨왕조를 세운 것이다.

삼공중 한분으로 그 혜종을 보필하고 있던 숙부인 왕자 이용상은 진씨의 이씨사냥을 피해 조상에게 제사지낼 제기를 들고 배를 띄워 보트피플이 된 것이다. 그렇게 표착한 곳이 지금 휴전선 바로 위쪽인 옹진현이었다. 이에 고려 고종은 이 안남 왕자를 반겨 화산군에 봉하고 인근 일대를 식읍으로 내려 정착케 한것이다.

몽고군이 내습했을 때는 완강히 싸워 이겨 적장을 무릎꿇려 항복을 받는 공훈을 세우고도 있다. 광복후까지도 그 공적을 기리는 수강문이 현지에 남아 있었으며, 백마장군이라는 토속신앙의 신명이 되어 액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오는 수호신으로 숭앙받기도 했다.

이 안남 왕자는 궤화성인 화산이씨의 시조가 되어 고려때에는 후손중에 정승 판서가 났으나 조선조가 들어서면서 두문동에 들어 불사를 하는 지조를 보였었다. 지금은 전국에 2백여 가구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이씨 월남의 이태조도 왕자가 여섯이나 되어 후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보도된 바로 안남 왕자인 화산군의 후손 대표인 35세손 이창근씨가 베트남 북부 하바크주에 살고 있는 이씨 왕족의 대표와 만나 족보를 교환한다고 한다. 안남 왕자가 보트피플이 된지 7백년만의 상봉이니 감개무량하다.



(이규태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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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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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0년만의 상봉 ”



♣ 7백년만의 상봉

3백여년전 숙종연간에 있었던 일이다. 제주도 사람 24명이 탄 배가 폭풍으로 표류 12일만에 안남- 지금의 월남땅에 표착하여 그곳 고관으로부터 신문을 받았다. 조선 사람들임을 확인하자 대뜸 언성을 높여 말하기를 우리 왕자가 조선땅에 표류했을때 살해당했으니 너희들도 살아돌아갈 생각을 말라고 공갈치는 것이었다. 이에 서로 붙들고 방성통곡을 했다는 기록이 정동유의 주영편 에 나온다.

이 기록은 7백년전 안남 왕자가 고려땅에 표류해 왔다는 사실을 월남 사람들이 널리 알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고려에서 극진히 우대받은 사실이 왜곡되어 살해당한 것으로 와전되고 있었음을 알게해 준다.

그 곡절을 이해하는데 월남 역사를 잠시 되뇌볼 필요가 있다. 우리 역사에 이씨조선이 있듯이 월남에도 이씨월남이 있었다. 그 이씨월남의 8대왕인 혜종이 반란으로 피난갔다가 미모인 어부의 딸 진씨에게 반해 후궁으로 들인 것이 외척세도의 씨앗을 뿌렸고, 그 후궁의 오빠들이 결탁, 이씨를 몰아내고 진씨왕조를 세운 것이다.

삼공중 한분으로 그 혜종을 보필하고 있던 숙부인 왕자 이용상은 진씨의 이씨사냥을 피해 조상에게 제사지낼 제기를 들고 배를 띄워 보트피플이 된 것이다. 그렇게 표착한 곳이 지금 휴전선 바로 위쪽인 옹진현이었다. 이에 고려 고종은 이 안남 왕자를 반겨 화산군에 봉하고 인근 일대를 식읍으로 내려 정착케 한것이다.

몽고군이 내습했을 때는 완강히 싸워 이겨 적장을 무릎꿇려 항복을 받는 공훈을 세우고도 있다. 광복후까지도 그 공적을 기리는 수강문이 현지에 남아 있었으며, 백마장군이라는 토속신앙의 신명이 되어 액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오는 수호신으로 숭앙받기도 했다.

이 안남 왕자는 궤화성인 화산이씨의 시조가 되어 고려때에는 후손중에 정승 판서가 났으나 조선조가 들어서면서 두문동에 들어 불사를 하는 지조를 보였었다. 지금은 전국에 2백여 가구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이씨 월남의 이태조도 왕자가 여섯이나 되어 후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보도된 바로 안남 왕자인 화산군의 후손 대표인 35세손 이창근씨가 베트남 북부 하바크주에 살고 있는 이씨 왕족의 대표와 만나 족보를 교환한다고 한다. 안남 왕자가 보트피플이 된지 7백년만의 상봉이니 감개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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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7-02-03 (토)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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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 한-월 관계사 ”



♣ 미니 한-월 관계사

휴전선에 잘린 옹진땅에 화산이라는 마을이 있다. '화산李씨'의 본관 땅이요, 이 화산李씨 시조가 안남왕자 '이용상'이다. 고려 고종때 지금 베트남인 안남의 이씨왕조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자 배를 타고 망명,바람부는 대로 와닿은 곳이 바로 옹진 화산땅이었던 것이다.

그 화산 인근에는 이 안남 왕자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그가 고려를 침범하는 몽골병과 싸우고자 쌓았다는 안남토성이 있고 그가 조국을 향해 통곡을 했다던 월성암이 있고 또 안남이씨 왕조의 시조이름을 딴 남평리,그리고 당시 월남의 국명인 교지리가 지금도 지명으로 남아있다.

한국과 월남의 관계사는 이렇게 해서 13세기까지 소급이 된다. 임진왜란 후 명나라에 사신길 따라갔던 실학자 이수광이 북경의 사신들 숙소인 옥하관에서 안남사신 풍극관과 만나 필담을 하고 많은 시를 주고 받으며 친분을 두텁게 하고 있다.

이때 나눈 필담과 시가 지봉집 에 수록돼 있는데 이 글이야 말로 한국에 소개된 최초의 안남 사정이요 안남 풍물이었다. 그 가운데 안남에는 1년에 두번씩 익는 벼가 있고 여덟번 치는 누에가 있다는 대목은 당시 식자들로 하여금 월남땅을 부럽게 여기게 했던 것이다.

같은 무렵인 갑진년(1604)부터 3년간 월남을 이웃집 드나들듯 내왕하며 장사를 했던 '조완벽'이라는 조선사람이 있었다. 진주사람으로 임진왜란 때 납치돼가 일본사람들의 상선을 타게되어 안남을 내왕하게 된 것이다. 조완벽이 말년에 고향인 진주에 돌아와 살았는데 그의 안남에서의 견문이 역시 지봉집 에 수록되어 있다.

그후 숙종 정묘년간에 제주사람 24명이 탄 배가 추자도에서 바람을 만나 표류,17일만에 안남 다낭해안에 표착하고 있다. 그곳 관헌에 의해 보호받고 있던 중 조선에 표류한 안남국사람들이 조선사람에 의해 살해당했다 하여 보복하겠다고 겁을 주었으나 끝내 중국상선편에 안전하게 송환되고 있다.

조선왕조 실록 광해군 4년기록에 보면 제주도에 표류해온 안남 상인의 배가 있었는데 제주목사 등이 그배에 실린 보화를 욕심내어 안남상인들을 죽이고 약탈하고서 왜구의 배를 무찌른 것처럼 보고한 일이 있었다. 그러고는 한말에 안남미를 도입하여 흉년에 대처한 일, 30만 한국군의 월남파병으로, 한월관계는 이어지고 있다.

공산화로 17년간 단절됐던 베트남과의 국교가 다시 이어져 대사급 대표부가 양국에 세워지고 정식 수교가 이루어져서 지금은 한국이 투자국 대열에서 1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7백70여년 된 한월관계사에 새 장이 열린 것이다. 한국 혼혈아가 살고 있는 나라요 또 인도적이어야 했을 보트피플에 냉담했던 마음의 부채도 없지 않은 나라라는 감안이 있어야 할줄 안다.


(이규태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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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7-02-03 (토)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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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월 700년 비하인드 스토리 ”



♣ 한-월 7백년

인도지나 반도의 적화로 단교되었던 월남과의 수교가 다시 맺어지고 보니 역사적 인물 한사람이 떠오른다. '조완벽'이라는 진주의 서민이다. 임진왜란 때 붙잡혀가 일본 수도인 교토(경도)에서 노예살이를 하는데, 너무 고달프고 고향 생각이 간절하여 뱃사람이 된다. 빠져 나갈 기회를 엿보기 위해서다. 이리저리 전전하다가 지금의 월남국인 안남무역선을 타게 되어 4만리 뱃길을 세번이나 내왕한 것이다.

아마도 월남에 발을 디딘 최초의 한국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는 안남에서 당시 세도를 부리고 있던 환관 정소의 고대광실에 초대받아 예의지국에서 온 귀빈이라 하여 후대를 받고 있다. 이 대접받는 자리에서 '조완벽'은 책 한 권을 펼쳐 보이는데 다름 아닌 선조때 문신 지봉 '이수광'의 시집이었다.

당시 안남 지식사회에서 이 조선 학자의 시가 필사되어 두루 읽히고 있는데 놀라고 있다. '이수광'은 선조 30년(1598) 명나라에 사신길 갔다가 마침 안남사신인 풍극관과 한 숙소인 옥하관에 한달남짓 머물면서 주고 받았던 필담 시집인 것이다. 운을 넣어 문답을 하고 있는데,그 한 대목을 들어 보면 이렇다.

귀국은 겨울도 봄처럼 따뜻하고/얼음과 눈을 못본다던데- 하면
남국은 겨울이 적고 봄이 하많아- 라고 대꾸한다.
귀국에는 두번 익는 벼와/여덟번치는 누에가 있다던데-"하면
두번 익는 보리와/여덟번 치는 삼도 있다- 고 운을 짚어 대꾸하고 있다.

옛 선비들은 말이 통하지 않고도 이렇게 멋지게 필담을 나누었으니,얼마나 낭만적이었던가 부럽기만 하다. '조완벽'은 그 밖에도 많은 견문을 남기고 있는데, 안남 여자들은 신발이 없어 맨발로 생활하면서도 1백살을 넘겨사는 장수국이며 코끼리마저 무릎 꿇고 절을 하는 것을 보니 가히 예의를 숭상함을 알 수 있다 했다.

조선조 숙종 때는 제주도 이민 24명이 탄 배가 표류, 안남땅 페이푸에 표착하고 있다. 잡힌 몸이 된 일행은 예전에 고려땅에 표류한 안남 왕자를 고려 사람들이 살해 했으니 보복을 받아야 한다고 곤욕을 당하고 있다.

13세기에 안남의 이씨 왕조가 진씨의 쿠데타로 멸망했을 때 왕자 한 분이 고려땅에 망명,황해도 화산땅을 식읍으로 하사받고 화산 이씨의 시조로 귀화해 살아 왔는데,아마도 이 사실이 와전되어 안남 왕자를 살해한 것으로 구전돼 내렸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광해군 4년 제주도에 표류해온 안남 상선을 약탈, 인명을 살해하고 배를 태워버린 사건이 있었는데,그 중에 왕족이 하나 끼여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베트남과의 재수교를 보고 평탄치만은 않았던 한-월 7백년사를 더듬어 본 것이다.

(이규태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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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7-01-30 (화)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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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


미국과의 전쟁 후 남북 베트남은 선거를 통해 1976년 7월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했다.
통일 후 외국원조의 단절, 낙후성, 심각한 전쟁 후유증, 미국과 서방의 제재 및 봉쇄 정책, 이웃 강대국과의 관계악화, 캄보디아 크메르 정권의 침공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경제, 사회, 정치 운용에 관한 개혁을 시행하고 있으며, 특히 경제분야는 국가의 통제와 시장기능을 복합적으로 받아들인 혼합경제구조를 운영하고 있다.

시장 경제체제로의 전환에 따라 많은 혼란을 겪었으나 현재는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1995년 7월에는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결정했으며, 8월에는 ASEAN 에 정식 가입하면서 국제적인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 고무이며, 시멘트, 화학산업도 발달해 있다. 한국과는 1992년 12월 22일에 한·베트남 수교가 이루어 졌으며, 1993년에는 호치민시에 총영사관이 개설되었다.


◈ 수 도 : 하노이(Hanoi)
◈ 인 구 : 8,000만명(2002년말 기준, 약 80%가 농촌 거주)
◈ 기 후 : 고온다습, 북부 - 아열대성 기후, 남부 - 열대성 기후
◈ 면 적 : 330,991㎢(한반도의 1.5배)
◈ 주요도시 : 호치민시(Ho Chi Minh City)
◈ 주요민족 : 베트남인(88%), 중국계(3%), 타이, 무온, 메오, 모이족등 약 60여 소수민족
◈ 주요언어 : 베트남어(공용어), 영어,불어,러시아어(약간 통용)
◈ 종 교 : 불교(80%), 카톨릭(9%), 카오다이교, 호아하오교 등 종교의 자유 보장


베트남 총면적은 330,991㎢로 한반도 면적의 약 1.5배이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늘고 긴 S자형으로 총길이 1,600㎞에 걸쳐 자리잡고 있다.
북쪽으로는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동쪽과 남서쪽은 남중국해와 타일랜드만에 접해 있다. 서쪽의 쯔엉 산맥을 경계로 라오스, 캄보디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국토의 ¾이 산악, 고원 구릉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부지방의 레드강 유역(15,000㎢)과 남부지방의 메콩강 유역(60,000㎢)이 대표적인 경작지역이다. 동쪽과 남쪽의 해안선은 무려 3,260㎢에 달하며 약 2천8백60여개의 강이 있다.


기후는 남부는 몬순기후, 중북부는 열대기후로 남북으로 1,600㎞의 길다란 베트남에서는 지역별 뚜렷한 기후상의 변화가 있다. 여행 최적기는 한국의 겨울시즌이 베트남엔 강우량이 최소이며, 기온이 너무 낮지 않을때가 좋다.

베트남은 유교 문화권에 속하면서도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가부장적인 요소가 약하며, 남녀 평등의식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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