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적지여행의 체험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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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세월이 훌쩍 흘러
아련한 그리움이 있는 땅
내 마음의 그리움을 찾아 떠난다
설레임에 가슴벅찬 베트남 전적지여행
       
 
전적지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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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진사    
작성일 2008-09-11 (목) 09:55
ㆍ추천: 0  ㆍ조회: 2139    
IP: 220.xxx.204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2966.8
“ 투이호아 추억을 찾아서... ”


40년 세월이 흘러간 그 땅,

찾아 가봤자 잠자던 막사흔적은 간곳 없고,

기억의 한조각을 꿰어마출 파편도 찾기 어려운, 아주 변해버린 들판에서 해메이게 될텐데

왜 거길 또 가려고 하는지?



베트남 투이호아.

내 젊은 시절 조국의 부름으로 목숨을 걸고 1년간을 머물던 곳.

기억은 희미해 졌어도 '월남' 이라는 두글자는

가슴에 영원히 남아있으니까

이유없이 또 가고, 또 가려고 하는 것이다.




지난번 갔을땐

혼바산을 바라보던 관망대옆 경계초소앞에 하얀색으로 놓여있던,

큰 돌맹이 3개를 겨우 찾아냈을 뿐이다.




천덕꾸러기가 되어 길 옆으로 굴려져 있지만, 내가 올때까지 기다려준 것 같았다.

풀뿌리 돌맹이 하나만 봐도 반갑다더니 정말 그랬다.

40년전 흔적을 찾을거라고 기대를 하고 갔는데, 겨우 돌맹이 3개뿐이라니...



주월백마30포병 대대장실 앞에는 조그만 팔각정이 있었다.

위문공연이 오면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던 곳.

당시의 인기가수 남진은 지금도 방송프로에 얼굴을 비치고 있던데 볼때마다 옛생각이 나더만...



그 시절 추억은 간곳 없고

근처에 남아 있는건 팔각정 주춧돌 3개만 발견 되었다.



그래도 흔적은 남아 있었노라고 위안을 받는다.

다른 부대 전우들이 함께 갔기때문에 스쳐가듯이 3시간 정도를 머물며 찾아 봤는데

겨우 내가 근무하던 지역 땅을 밟아 본 것만으로 만족해야했다.

다음에 가면 하루나 이틀 시간 여유를 가지고 꼼꼼히 둘러봐야겠다.

그시절 흑백사진을 모두 꺼내들고 가는데 좋다. 그래야만 기억을 더듬을 수 있을테니까...



211.108.238.60 황진순: 이번에 안케패스 기갑 1 중대 기지 에 가면 저가 졸병시절 항상 근무서던 그리고 적의 세이파 침투한 1 초소 앞에서도 사진찍어보고 ..월맹군 3사단 18?12? 연대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81미리 한번씩 기지 저멀리 건너편산에 연막탄 기초사격후 고폭탄 사격하던곳..그리고 1 중대원들의 생명수인 19번도로입구의 옹달샘(당시엔 몰랐지만 중대주변에 뿌린 고엽제의 독성이 고스란히 스며 들었을)도 보고.. 파리 휴전회담후 한국군 통행금지지역인 안케읍을 마지막으로 가보던곳등..이번가면 학실히( ㅎㅎ) 보고 올람니다..그때의 추억으로 여행해 봅니다..그림과 음악 감사드리며 추석 잘 지내셔요.. 아~ 가 보고싶은 638 고지와 기갑연대 1 중대 전술기지... -[09/08-10:33]-
211.108.238.60 기갑 1: 나 대신에 부인호 전우님이 행불되지는 않았는지 아님 이덕조 전우가 탄약고 폭발로 본국으로 후송오진 않았는지..같이간 부인호,이덕조,정복암,그리고 나(7차 32제대)명절이 다가오니 더욱 가슴이 아려옵니다... .내가 그곳에서 전사했더라면 ..아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동작동에서 쓸쓸히 누워 있을건데..... -[09/08-10:48]-
59.10.160.202 차경선: 그래도 큰 돌멩이 3개가 어디랍니까? 비교사진에서 보니 틀림없이 그 돌멩이인데요. 전적지 갈땐 옛사진 품고가야할 이유를 찾았습니다. 최전우님!, 그리고 황전우님!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09/08-11:08]-
77.181.247.148 수색대: 황진순 전우님 월맹 18 연대가 맞지요.우리 수색중대 전에 첩보 들어와서 오전에 작전 나갓다가 왔는데 부대 들어와 점심먹고 바로 투입되어 같이간 전우가 전사한 1 대대 지역 지금도 1 중대 맞은편 고지에서 찍은 사진 안캐패스 사진을 보며 한잔하면 이야기 하는 곳이지요. -[09/08-18:11]-
211.216.37.224 김영배: 혼바산을 점령한 직후 우리 2중대는 1중대와 5km 정도 거리에 마주 있었다.작전 나가기 전에 1번국도 옆에서 나중에 전사 하셨다는 유재문 중대장과 우리의 한상목 중대장님과 서로 반갑게 만나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 지금에 기억이 새롭다.두분 키가 커서 보기에도 좋았고,기억에-전자에 중대별 戰r果가 좋아서 인지 유재문 중대장님이"으쓱?"대시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영국 산악 登頂人인 "힐라리"가 기자들 질문에"산이 있어 오른다"고 했는데 지금의 우리는 그게 문제가 아니다."우리가 있었던 곳에 이유없이 가고 싶은것"이다.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것은 그곳도 마찬가지,제안하나 하겠습니다.죄송스럽지만,그곳에 가시는 전우님들은 그곳 주민들의 허락을 얻어 흔적을 발견 하시면 표시를 해놓고 오시면 어떻겠습니까!즉-28연대가 있던곳 "둘하나 여섯(30포대 무전호칭)있던곳.각 중대자리 작전 지역등등-나중에 그곳에 가시는 분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터이니(염치 없지만) 애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09/08-23:34]-
211.216.37.224 김영배: 그런데 외국 가사로 여자가 부르는 노래의 의미는 뭔지 모르겠습니다.(원래 슬픈노래 가사지만)제가 해석 하기엔/밤하늘에 별빛은 시들지 라도 한번준- 마음 인데 변할수 없네/(월남의 밝은달과 반짝이는 별들은 시들수 있어도 한번 맺어진 우리의 전우애는 변하지 않고 점점 더-가까이 닦아온다./( 괜찮겠습니까!)- 캄란에서 투이호아로 주둔지로 옮긴후 아침 저녘으로 수령해 오는 C.레이션의 숫자가 달라질적 마다 우리들이 부른 노래를 아시는지요!
노래를 하겠습니다./고국으로 떠나가ㅡ는 군용행 함선아/여기는 열대전선 월남의 정글이다/무더운 천막속에 달뜨는 밤-아/언제나 귀국하여 고향엘 갈까/그리운 영자에게 편지야 잘-가거라/
전우들은 자꾸-죽고 부상자도102로 후송되고-전쟁의 초짜들이 처음엔 감옥에 갇혀있는 것과 비숫했지요.어디로 탈영?할때도 없고-그래서 그런 노래도 했답니다.눈물이 글썽글썽 해 갖고-. -[09/09-00:20]-
211.216.37.224 김영배: 최진현님! 안녕 하십니까.지난-현충일에 26묘역에 오셔서 저희 2중대2소대원을 만나 주셔서 참-감사했습니다.올려주신 사진들은 전우들에게 모두 보게 했습니다.9그쪽 분들은 역정을 내시겠지만 충청 사람도 아닌데) 그렇게 됐습니다.안성에 홍석진 전우가 최진현님께 전화를 했다고 들었습니다.기념탑을 세운다고-창피한?얘기를 하겠습니다.1진으로 같이 갔었던 병장 한명은 올해 7순 잔치를 했습니다.그게 이유가 아니라 우리2소대 전우들이 대부분 컴퓨터가 뭘 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겁니다.아니면 한번도 켜 보거나 꺼 본적도 없지요.홍석진을 보고 사진을 보게 하려고 전화를 했습니다.(최진현님의 德으로 찿은 전우 입니다.그후로 하루에 한번 꼴로 전화)집에 컴이 없답니다.'빨리사 임마!"(저 와는 월남에서도 친 했습니다)제가 박박 우겨서 컴을 구입하게 해놓고"맨-위 주소창에 거기에다-"뭐? 주소창이 뭔데?(헉-큰일이다)어쨌던 곡절끝에 한시간 이십분만에 전화기 넘어 환성의 큰소리로 들려오는 말"야!!-사진 나왔다!!지금 실정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글을 올리기는 커녕,찾아서 읽을줄도 모릅니다.저희 2소대가 덧글이 없는것을 이해 하십시요. -[09/09-00:58]-
222.233.25.164 검은베레 : 한국전에 참전하신 외국인 노병 께서 찿아주시고 발전한 대한민국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는 그 분들의 감회는 얼마나 깊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월남전의 5,000 여 전우의 희생과 수만의 전상자인 상이자와 고엽제의 희생으로 조국을 살렸습니다. 일본은 한국전으로 인해 선진국 발판이 되었고, 대한민국은 월남전으로 인하여 상급 중진국으로 들어 섰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조국은 외면 하고 있지만 조국을 살리고 조국을 위해 피흘리며 싸운 전쟁터가 생각이 나서 살아 있기에 ... '귀전본능'이라 해야 됩니까?. -[09/09-01:36]-
최진현: 백마28연대 2중대 김영배 전우님 안녕하세요? 지난번 동작동에서 산화한 전우들에게 보내는 편지 감동적이었습니다. 매년 년말이면 베트남을 갔는데 이번엔 맹호전우들 따라 갔다가 투이호아를 거쳐서 내려올 예정입니다. 맨위에서 두번째 사진은 1970년 3월 경계초소 앞으로 밤중에 기습해 들어오던 VC 세이파부대 5명을 사살하던 바로 그 초소입니다. 다른 전우는 그걸 못 느끼는거죠. 전우 각자가 기억하는 사연은 모두가 다를테니까요. 베트남 가면 이제 한국군 기억을 하는 사람들은 드물고 오히려 젊은이들이 한국군 시설물에서 놀던 기억을 이야기 해 줍니다. 마을이 들어선 곳에서는 한국군 흔적 찾기 힘듭니다. -[09/09-07:42]-
211.216.37.142 김영배: 최진현 전우님 감사합니다!제가 올린 덧글에 처음으로 답변을 해 주신 고마운 분 이시고 전우들을 위해서라면,전우들을 위해선 시간이 어쨌던.장소가 어디든 달려 가셔서 컴을 켜면 이곳부터 들어 오시는 전우님들께 그림으로,그곳의 사정을 생생히 알려 주시는 努苦에 감탄과 아울러 감사를 드립니다.제가 최진현님의 글을 읽고 옛 詩를 인용한것이 있었습니다.그- 詩를 다시 써 봅니다.칭추수소 압천근(秤錘雖小 壓千斤)/저울추는 비록 작지만 천근의 무게를 다룬다/는 뜻으로-그 말처럼ㅊ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다-하시는지 경탄 스럽습니다.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미국인이 지금도 지팡이를 의지해 한국을 찾는 마음은 지금의 우리들 같이 참전했던 지역에 무조건 이유없이 찾아 보고푼 마음 이겠지요.지난 年初에 저희 2중대 2소대원들이(여행사에서 투이호아엔 못간다 해서)하노이를 부부 동반해서 갔었는데 저만 가지 않았습니다.예를 들어 미국에 이민간 동포가 40년만에 고국엘 왔는데 고향인 부산은 못가고 경기도 땅에만 보고 가야 한다면 허무 한거죠.집사람들이야 좋기만 하겠지만,
그래서 우리 28연대가 처음에 약-한달간 주둔했던 캄란이나 다음 -[09/10-21:01]-
211.216.37.142 김영배: 투이호아 지역을 간다면 무조건 갔었겠지요.그야말로 걸어서 라도 갑니다.청룡과 교대했었던 캄란의 해변가.명사십리를 가 본적은 없으나 그곳만은 못 하리라 생각 됩니다.투이호아로 이동해 수없이 팠었던 교통호 개인호 그리고 우개호,그리고 혼바산 차이산 - 두살밖이 손자를 조금전에 구렁이가 삼켰다고 구슬피 우시던 반남 부락의 할머니 할머니집 앞에 개천,1번 국도를 이어주는 고무다리를 vc가 폭파하면 우리가 다시-설치하고 연예인들이 온다고 경계를 하는데 백금녀씨가 탄 찦차 조수석이 무게로 기우뚱 해서 가는 모습을 보고 웃었던 그곳,등등,먼저갔었던 전우님들의 신세를 질려는 생각 죄송합니다.
그저께 밤에는 최진현 전우님 께서 올려주신"저세상에 먼저 가 있는"제 사진과 올려주신 글을 읽고 연수원 현관밖 계단에 앉아 한동안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훌쩍 였습니다.제가쓴 졸필 이지만.당시에 처참한 모습으로 사라진 전우들이 생각나서 그랬나 봅니다.시간과 날이 갈수록 멀어지기는 커녕-점점 더-그립고 단-한번 만이라도 보았으면--하는 마음은,저만 그런게 아니겠지요.내내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09/10-21:51]-
최진현: 대관령 지킴이 김영배 전우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투이호아에 가면 그 꼭대기 바위에 한번 가보고싶은 마음이 꿀뚝 같지만 접근방법이 만만치 않을것 같습니다. 투이호아는 베트남에서 공단으로 발전 시킬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글쎄요? 육로 교통은 너무 불편한것 같습니다. 다음에 백마가 조를 짜서 가는날 같이 한번 갔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12월초에 투이호아를 스치듯 지나갈것 같은데 28연대 본부를 지나서 다농강 건너는 새로난 다리를 거쳐 붕로만으로 해서 혼바산 언덕배기 길로 올라가보고 싶군요. 일정이 짧아서 계획대로 될런지는 미지수 입니다. 추석이 다가오는데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09/11-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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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호성            
작성일 2008-06-11 (수) 01:00
ㆍ추천: 0  ㆍ조회: 2076    
IP: 118.xxx.36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2689.8
“ Tuy Hoa~Nln Hoa~Nha Trang까지 오토바이 질주. ”


백마부대 십자성부대 사랑하는 전우님들 힘내시고 건강하셔서
조국을 위해 피 흘렸던  산천 푸른 숲과  흘러가는 강물
위에 고통스런 전쟁의 상처 모두 버리시는 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베트남 전적지 길에서....

백마사단  생명이 숨쉬는 지구본 위에 생명이 자라고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희망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느낍니다..



머나먼 쏭바강의다리...



백마사단 사령부 입구에서 귀신잡는 월남해병과  덩치큰 월맹군ㅎㅎㅎ



한번해병은 영원한 해병  귀신잡는 해병 후배님이  임무교대 십자성부대 정문 경계초소에서빵꾸난 낙하산탄 공수부대 김성찬 전우와  이빨빠진 맹호 한호성 쓸모없다고
물러가란다.

지금부터  왕석호 젊은 해병이  베트남에  흘린피 희생된 선배님들의 역사도 함께 지킬 것이라 약속 했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표현 못했지만  진한  전류가 몸을간통하였다..

일단폼에서 미듬이갑니다.ㅎ



개인의 두서없는  지난날의망상..............
투이호아 ~닌호아~냐짱까지...
2008년 5월19일 07시 Sai Gon출발 5일만에
베트남내륙도로 서쪽 캄보디아 국경 가까운 도로 따라
14번 도로와 19번 도로 가로질러  1번 도로 따라 혼바 산
누이 다 비아  붕 로만을 지나 냐짱에 도착 우리일행은 냐짱 바다보다 한 차원 높은 환상도로를 달리게 된다.

오토바이가  위험성도 있지만  오토바이가 아니면 최고의 기분 좋은 환상도로 느낌을 체험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권하고 싶지는 안습니다.
좋은 만큼 어려운 일도 많이 따르기 때문...

지금 오토바이로 달리는 도중경치는 아름답지만 한번 보는 것으로 족한 것  영원히 떨 구어 내지 못하는 아물지 않은 응어리 전쟁에 상처라는 것  누가 아리 오 만은 떠다니는 한 점 의 흰 구름에도 들판에도 철석 대는 파도 위에도 나의 전우들살과 뼈 피가 묻힌 곳 나는 살아있지만 나의피도 많이 뿌렸기에 베트남이란 이국땅 42년 전 오늘도 못 잊어  나에겐 방황 의 삶이다.

42년 전 열아홉 꽃다운 청춘 시절  조국은 나를 필요 로 했고 내가 교육받기를 조국을 위해 싸우다죽는 것은 큰 영광이라고 배웠으며 살아도 영광이라 했다. 

나는 지금 뼈만 앙상하다.
베트남 전쟁에서 선물 받은 병 오래되었고 마음이 무척 아프다.

그러나 나는 군인 이였기에  전장에서 죽음도 당연하다고 지금도 여긴다.

진정한 군인이란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하며 군인이라면 적과 싸움을 시작하면 적의 숨통을 끊거나 나의 숨통이 끊기기 전에는 물러서면 안 된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나는 조국을 원망하지 안 는다. 대신 내 자신의 아픈 마음 씻어줄 조국도 사람도 없다 스스로 달래기 위한 머나먼전적지 탐방 배낭미고 언제이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이것이운명의 길이기에 행복하기도 하다..

마음은 슬프지만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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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까페        
작성일 2008-03-12 (수) 23:42
ㆍ추천: 0  ㆍ조회: 1482    
IP: 118.xxx.247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2414.8
“ 20세 때 한호성고향 치탄 전적지~~ ”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로운 86고지
이 전투에 생존자가 몇 안 되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한 교대 자 없는 보초 근무자 한 호성 평균1년1회 순찰 이제는 다리도 아프고 누구 교대 보초 근무자 없으신지요.>>>>
공격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지만  방어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
잘 알려진  군법에 몇 항 몇 조에  나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혜산진 26연대 1대대2중대  1967년 5월 16일 02:00시  처참했던 86고지 딴 쭝 마을  연대장님 박 완 식 대령 중대장님은 이 전투 후 한번 도보이지 않았다.

대대장은 부임 직전이라  2중대에 책임이 없었던 것
1대대2중대 고지  바로 두 사람 앉자있는 곳이 현제 중대본부 자리입니다..



99%점멸당한 1소대  땅굴막사  초저녁부터  개가 짖어 댓 것만 다음날 작전나간다고 맥주 한 깡 식 마시고  보초가 단한명도 없이  자다가 막사에서 또는 막사에서 뛰쳐나오다

이미 세 이파들에게 점령당한  순간 싸워보지도 못하고 비참하게 당하고 만 곳입니다.

군인의 철칙  보초가 없었다는 것은 자살행위 엇다.
42년 전 비극의 장소  2중대 1소대자리 지금은 많은 나무자라고 자초만  무성한 현제모습>>>




이것이 42년 전 흔적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것을 보는 순간 그날의 함성과 어둠속에 들여오던 비명 소리 들려오는 듯 전사한 어느 전우의 찢겨진 정글복은 아닐까?


1994년부터 한국에서 또는 사이공에서15회 14년간 딴 쭝 마을 에 있는 고지를 먼 치 에서만 바라보고 차마 고지위를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옛 상상이 그대로남아 있어 그랬지만  2008.2.21일 이곳을 올라 갓을 때 는 42년 자란 나무와 잡초만 무성하다. 하지만 기억이 생생해 나의 개인호까지 확인 할 수 있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것처럼  패배의 전투라서 쉬쉬 하며 철저히 숨겨진 쓰라린 패배  전군 아닌 1개 중대의 패전이고 죽은 자는 도리 킬 수 없다지만  몇 명이라도 남은 우리와 전군에 교훈은 되었다. 비온 뒤땅이 굳는 것처럼 아픈 만큼 성장을 했으며  그 후 강력한  전사로 성장했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 전투 후  진정한  군인 강력 하면서도 부드러움과 전쟁터에서 군인으로써 필요하면 죽는다는 것을 당연 하게 받아드리고 돈은 없으면 벌면 되지만  파리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생명은 한번 꺼지면 두 번 다시 복구가 안 된다는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2중대2소대 2분대를 이야기속에 강조하는 것은 제가2분대 이기 때문이 아니며오작

                  교 1단계 한 달 정도 작전중후송되어 한 달만인오작교 3단계 1967년 5월15일에도착 


                  16일 중대가 작전출동 한다고 하였다. 나는 후송병원에서 오늘 왔기 때문에 작전에

                  서 빠지고 밤10시부터 11시 보초였다


바람도 약한 날  미세한  깡통소리를 듣게 됩니다.

당시 고지 공사 중  화기 소대 쪽은 철조망 미완성 개인호는 완성 됐지만 교통호가 미완성 상태 철조망에 조명지뢰  깡통을 달아 둔 깡통소리가 미세하게  들리기도 하고  귀 기울이면  안 들리고  분명이 가깝게 들리다 멈추고 예감이 이상해서 12시 보초 교대 자 정 경권과  깡통소리를 둘이 확인했다.

함께 깡통소리를 듣고 혼자 판단보다는 둘이 일치 하는 판단
과 진단을 하고 비상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 엇다.

바람인지 의심했지만  적이라는 결론을 못 내리고  새벽 16일 1시 근무자 박 순덕과 정 경권  교대 시엔 깡통 소리가 분명 하게 들려  그래도 적이라는 판단은 못 내리고  새벽 2시가 되어갈 때  섬광을 이루며  10분정도 적 포 공격이  시작되고  수류탄 폭파와 함성소리가 들려오며  세이 파들이  중국제 방방이 수류탄 투 적하며  인해전술로  3곳을 뚫고 1소대 3소대 화기소대를 뚫고 들어 왔다.


1소대와 2소대를  공격해 들어오든 세 이파들은  2분대 보초둘이서 이미 대기 하고 있었기 때문에  2소대로 올라오던 적은  올라오지 못하고 좁은 계곡 하나차이 1소대로 몰리고 순간  분대막사에 자든  2소대원이 자기 호에 배치되면서 m-16 화력이 집중되면서 왼쪽은 접근 못하고 화기소대 쪽 오른쪽 적이 2소대까지 치게 됩니다.

적들이 베이스 안을 점령했기 때문에  앞뒤가 없어지고 호에서 나와  접근해오면 갈기고  수많은 폭 팔과 불타든 고지는흙먼지에 아무것도 안보였다.  총은 단시간에 너무 많이 쏘면 어둠에서 붉게 불 달아올라  탄착을 교환하면 실탄이 열에 자동 발사가 되어 순식간에  방향 없이 총알이 다 나가버린다.

백병전을 치룬 시간은 1시간 반에서 두 시간  산더미 같은 C-레이션 까지 모두가지고 어제 지급된 m-16 총 전사자들 총 까지 빼앗아 들고 치고 신나게 빠져 나 갓 다.

1연대 1대대 3중대는 당시  유명한 부대로 도망 치고 있는  적을 추격  하기위해 아침08:00시경 공중 지원에 나서  적들과 맞나 교전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1소대 3소대는 보초를 서지 않고  화기소대는 어제 온 신병이 까맣게 올라오는 적을 보고 공격 하지 못 하고  고참 깨운다고 돌아선 사이 뚫리고 말았다.

2소대2분대 우리는 초저녁에 깡통 소리 의심과  이상 유무를 인수인계한 것 한명의 보초가 200명이공격해오는 적을 몇 분의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답 몇 분 만에  소대병력이 투입된 것 올라오는 200백 명  방어할 수 있는 화력이 충분 하며 적은 쉽게 접근해오지 못했다.

전투이후 찍은 사진은 하나뿐입니다..



이사진은 02:00부터 04:00시 백병전이 끝나고 적들은 다 빠져 도망 친후 1소대 중화기벙커 속에 3명 정도의 적이 불과 10~15m 거리 2분대와 정면에 있었기 때문에 빠져나가지 못하고  자동 소총으로  끝까지 응사해왔다.

06:00시경까지 근 두 시간을  서로 응사했지만 결판나지 않았다. m-79 1번 중화기 벙커에서 유탄발사기로 공격했지만 좁은 벙커 창에 명중을 못하다가  마지막 유탄발사 1발이 명중 벙커 안에 명중  적을 잠재웠던  장면입니다.

지금은 나무가 무성하지만 당시엔 전체가 고지라서 깨끗하고 시아가 넓어 빈틈없이 바라볼 수 있었던  1소대와2소대 간 좁은 계곡입니다.

1번 벙커 2번 한호성 3번 정 경권 0번 박 순덕 개인호임>>>



1967년 5월16일02:00시 붉은 표시가 세 이파 인해전술로 1소대를 점령 뚫고 들어와  공방전이 버러지고 있을 때 2소대 2분대는 중대기지 중  남쪽으로 약간 낮은 곳에 자리  하고 있으며  와지선 을 통과하는 적의모습을 보고 있었다.

B29조명낙하  A10포병 치탄 삼거리에서 고 강 태 규 전우님 말씀 이날 30.000발의 포사격을 이곳에 했습니다.


사격권 안에 들어온 적  사격을 하고 있는 것으로 표시됐지만
우리는 한방의 총도 쏘지를 못했다.

이유는 단한가지 1소대를 점령하고 3소대로 밀리는 위치 지휘관도 없는데 지휘 한 것처럼 명령을 받은 것처럼  적을 눈앞에 두고  여유 있게  갈겨 댓 으면  수많은 적을  사살할 수 있는데  되 얽힌  적군 속에서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 것이다..


결국 적군보고 사격을 못 한 게 아니라  수많은 비명 소리 들리는 방향에 전우가 석였다는 판단에 총을 쏘지 못한 것이다.
누구라도 그렇게 됐을 것입니다.

우리중대는  1967년 1월부터 계속 작전 중이라  인원 보충을 받아도 정인원은 150명이지만 이날 85명  적은 4사단 92연대 400명 1개 대대  엇습니다.
전투 후에  후회했지만  아군이 다 죽은 것을 알았더라면  조준도 필요 없이 m-16을4명이서 일인 1.000발식만 발사 했었어도 최소100명의 적을  쓰러트릴 수 있었는데  지금도 늘 그 점이  아쉽고 처음 공격이 시작될 때 우리가 집중사격으로 15명박에 쓰러트리지 못했습니다.

또 아쉬움 한 가지는 1소대에 단한명만 보초를 세웠더라도  죽음 대신  최소 200명을 쓰러트렸을 것이란 생각 지금은 다

지난 부질없는 일이지만  같은 상황의 전투를 한다면 비명소리 들려도  총을 쏘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후기...
혜산진 26연대 1대대 2중대 패전의 원인은 보초를 서지 안  앗던 태만 음주에서 가져온 비극이 엇다.

1967년 5월16일은 (그해 3월15일에 시작된 오작교 작전 1단계 나는 4월 중순경 치탄 308고지에서 후송되어 한 달 만인 5월15일에 중대에 도착 비극을 맛보았다.

그러니까 근원은 오작교 작전 2단계로 보시면 됩니다..
홍길동 작전은 그해 7월로서  복수 전이였습니다.
오작교 홍길동작전은 백마28연대와 맹호26연대 합동작전 맹호26연대는 같은 해  정확히 1월3일 04:00시를 시작으로 7월 홍길동까지 계속 작전중이였습니다.

중대인원은 출발할 때 150명 5계월 작전 기간 동안  75명
줄고 5월16일 이후 중대인원은 135명이  줄게 됩니다.

외로웠지만  14년 동안  년1회 근처를 가고도  고지를 오른 것은 처음  이제는 저도 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찾는 전우도 없을 것이며 한호성이가 죽고 나면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 질것입니다..

이와 같이 패자는 말이 없고  패자가 있던  산도 패산이 되어
산도 슬퍼할 것입니다.

전쟁을 해서는 안 되지만  해야만 될 경우  반드시  죽어버리거나  승리하는 것 뿐  그 외 상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끝>>>

                                  


                               


       
      이름아이콘 강진욱
      2008-04-14 10:30
      단쭝 마을 86고지 67년 5월16일밤 의 비극 을 총알이 비오듯이 쏟아지는것을 포탄이 쌕쌕 거리며 우리들 의 등 과 머리위로 날아가서 바로 눈앞 500-600 미터 앞에서 콰쾅쾅쾅 터지는것 을 우리는 생중계방송 보듯이 보았다
      그 고지 아래 폐쇄된 철길 과 자동차 도로 사이에 우리 맹호공병 2중대 1소대 와 3중대 1소가       226 연대 소속 장갑소대 의 지원 을 받아 도로지뢰탐지및 피난민 수용소 건설을 하며 주둔하고
      있을때 ,,,,,,,,, 밤새도록 지원사격 및 위협사격 을 하고  이튿날  실탄 몇발수류탄 몇개 조명탄
      몇개 밖에 남지않아서  급히  보급 요청을 하여 싣고오다가  교량이 폭파되어  우리소대에 파견되어 있던 차로 나가서 옮겨 싣고  들어오다가 지뢰가 폭발하여 차는 산산 조각이나고  2명 사망 3명 중상  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여  긴급하게 헬기 를 요청하여  사상자 를 후송 시키고 보급 품을 헬기로 몇번 싣고들어왔던 일이 지금도 선하게  생각 이납니다 올봄에 꼭한번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던 그 전적지 를 방문해보고싶어 계획중에있읍니다
         
       
        12
      작성자 강진옥        
      작성일 2009-02-02 (월) 23:31
      ㆍ추천: 8  ㆍ조회: 818    
      IP: 124.xxx.122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3535.8
      “ Re..구사일생의 현장을 42 년만에 순방 ”
      2008년 4월  전적지를 탐방하려고 옛날  함께했던 전우들을 수소문 해보았으나  우리는 병과가 공병 이라서 오작교 작전에 참가할 당시에도 낮에는 도로정찰 지뢰탐지 피난민수용소 건설 등으로, 밤에는 매복 등 의 임무를 띠고 있었기에 소대원의 숫자가 몇명 되질않아서 2개소대 다합해봐야 급수장 파견 단정대 파견 기타사고 후송자 등을 빼고나면 그야말로 장비마져 아직까지도 M1 소총에 칼빈소총  LMG 수류탄 수타식조명탄 정도로 정말로 자체 경비 하기에도 숫자나 화력이 너무 약한 상황이라서 오작교 작전당시에도 장갑소대가 지원경비를 나와서 함께 지원을 해주고있던 형편에다가 42년이 지난 지금은 함께갈 전우들을 찾을려고 애를 써도 고수부 소대장님과 4명의 전우들에게  보훈처 를 통해 어렵게어렵게 알아 가지고 같이 동행하자고 연락을 하였으나  한사람도 함께동행을 할 전우가없어서 마누라님 을 화장실 갈때 가방이라도 지켜 달라고  장모님이 96세 노환으로 누워계셨는데다  무리인줄알면서도  도저히 언젠가는 한번이라도 가보고와야  내인생의  평생의 숙제가 풀릴것같아서 무조건 인천공항으로 가서 비행기에 몸을실었지요
      한밤중에 호치민공항에 내려서  인터넷 에서 알았던 다이야몬드 호텔을찾아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무조건 푸캍 행 비행기를 타고 푸캍 공항에 내려서 택시기사 들이 10 여명 모여있는데  1연대 지역 지도와 26연대 지역 지도를 카피해가지고 간것을 내놓고 ( 66년 12월말에 1연대 재구대대 푸캍산아래로 배속되어 있다가 3월경 26연대 오작교 작전지역 치탄에서 3~4 KM 정도되는 지역 확실히는 몰라도동수안지역 단쭝마을로기억되는데 그곳에 주둔하고있을때 5,16일 새벽 인접해있던 OP의 보병중대의 기습사건을 우리가 무전기로 들으며 밤새도록 지원 사격을해주며 포대에서 날아오는 포탄 이며 조명포 항공조명 이튿날 아침에 6~7회 적십자 헬기 로 실고 나르던 일 등이 기억이남 )  아무리 설명을 해도 푸캍마운틴 도 안쾅 바닷가도 송카우 도 동수안 도 치탄도 알아 듣는 사람이없어서  그야말로 속이 갑갑 해서  어쩔줄을 몰라하고 있는데 그때 마침 푸캍 공항 사장 이라는 친구가 그광경을 보고는 다가와서 자기가 한국인 친구를 알고있다고 하면서 전회를 해주는게 아니겠어요  
      전화 통화를 해보니 퀴논에서 보세가공 무역업 을하고있는 전길순이라는 분이었어요
      택시를 타고 그분이오라는곳 으로 퀴논 시내로 가서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모든일을 다제쳐놓고 자기차로  지도만 가지고 전적지를 찾아 남탕 맹호사령부로 동수안으로 죽음의사선을 넘나들었던 단쭝마을로 보급품을 싣고 들어오다가 지뢰가 터져 2명사망  3명부상을 입고 본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던 치탄고개넘어 철길과 도로가 나란히 달리던길이있는그곳과  송카우로 푸캍으로  안깡 바닷가로   42년전의 기억을 되살려 어렵게나마 찾을수가 있었지요 그나마 좋으신 고국동포 전사장님 을 만나서 아쉽게나마 전적지 순방을 마치고 판랑으로 나짱으로 호치민으로 내려가면서  투어를 할계획으로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가고있는데 한국에서  장모님이 돌아 가셨다는 급한전화를 받고   모든계획을 취소하고  한국에서 비행기표를 다시 티켓팅하고 부랴 부랴 귀국하는 바람에  15 일 정도 예정하고 호치민 에가서 좀 여유있게 여행을 할려든것이   아쉬움 만 남기고 귀국 을안할수가 없었지요  사진은 찍는다고 찍었는데 많이 찍지는못하고,,,, 컴이 서툴러서 올리지도 못하고  앨범에 는 있고요  이렇게 글 쓰는것도 진땀을 빼고 쓰고 있네요  누가 관심있게 읽어 주실분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해야 내마음이라도  풀릴것 같아서요  
       
      이름아이콘 신상호
      2009-05-26 12:18
      고생 하셨겠네요,저도 맹호사령부에서 근무를 하였는데 그곳을 가보고 싶어서요, 어떤 방법이 좋을지요,윗글에 전길순 사장님이 큰힘이 된것 같은대요?저는 서울에 있습니다,선배님 연락번호 좀 알려주시면 안될까요?자문을 구하고 싶습니다(010-2735-4567)
         
       
        11
      작성자 강진옥        
      작성일 2009-01-01 (목) 19:11
      ㆍ추천: 0  ㆍ조회: 1293    
      IP: 58.xxx.18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3457.8
      “ Re..첬?전적지 순방다녀왔읍니다 ”
      컴이서툴러서 실컷 댓글 작성했다가  false ( 오류 )  가떠서 용을 쓰다가 다 지워저 버렸읍니다
      아이구 아깝어라  
      지난2008년 봄에 무작정 여비도 빠듯하게,,,,, 떠나고보았지요 마누라 님 만 데리고 둘이서 ,,,  천신만고끝에  퀴논 송카우 동수안 푸캇 남탕 등 사선을 넘었든  전적지순방을 마치고   베트남 에살고 계시는 전우들도 만나뵙고  나짱 호치민 등 관광을 할려고 퀴논에서 나짱으로 가는 마이크로버스 안에서 장모님이 별세하셨다는 급한 비보를 받고   한국에서 가족들이 티켓팅을 하고  야단법석을 떨고 급하게 귀국을하여 가까스로 장모님 장례치르는날  참석하는바람에 반쪽 여행이 되고 말았읍니다
      요즘은 가끔씩 사진으로나마  회상에 젖어봅니다  컴실력이  모자라 사진은많이 찍었는데 ,,,,,,,   메일 ; kjotiger@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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