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적지여행의 체험정보
www.namcafe.co.kr 남까페
40여년 세월이 훌쩍 흘러
아련한 그리움이 있는 땅
내 마음의 그리움을 찾아 떠난다
설레임에 가슴벅찬 베트남 전적지여행
       
 
라이따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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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까페
작성일 2007-12-30 (일) 20:59
ㆍ추천: 0  ㆍ조회: 1049    
IP: 118.xxx.72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1959.22
“ 아버지를찾습니다.. ”





No, 14612
◎ 이름: 최진현 (vietvet@korea.com)


◎ 홈페이지: http://vietvet.co.kr

2007/7/11(수)

◎ 조회: 485


[라이따이한] 아직도 찾고싶은 아버지...다시 올립니다.  





베트남 호치민시
대한민국 영사관 영사님 귀하



영사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1969년 4월 26일 베트남 캄란에서 한국인 아버지 이치휘 (Chea Hui Lee)씨와
월남인 어머니 호티신(Ho Thi Xin)씨 사이에서 딸로 태어난 호티김 론 (Ho Thi Kim Loan)입니다.

한국인 아버지 이치휘 씨는 지난 1968년 캄란반도에 위치했던 미국업체인 빈넬(Vinell)에서
근무하셨으며 저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셨고 따라서 본인이 출생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저의 아버지 나이는 25세 정도였으며 1968년에서 1970년까지 빈넬 회사에서 근무하시다가
다낭(Da Nang)으로 옮기신 후 1972년 한국으로 귀국하셨습니다.
어머니와는 1975년 이후 연락이 끊겼으며 어머니는 1951년생이십니다.

저는 생부(生父)를 찾고자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저의 생부역시 지금은 또 다른 가정을 이루고 계실 것으로 생각되어
저의 어머니께선 아버지께 짐이 되기를 원치않고 계십니다.
그러나 저는 꼭 한번만이라도 아버지를 만나 뵙고 싶을 따름입니다.

부디 대한민국 영사관 영사님께서 소생이 아버지를 만나 뵐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리는바 입니다.

이 경우 저의 아버지 소재를 파악 하시는 과정에서도 저의 아버지 지금의 가정사에
하등의 지장이 초래되지 않도록 처리해주실 것을 아울러 애원합니다.

영사님의 도움에 감사드리며 좋은 소식 있기를 고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호티김 론 드림

첨부: 최근 명함판 사진1매   






(번역: 정재성 전우님)




위의 사연은 베트남에 거주하는 김성찬 전우와 한호성 전우님께서 '라이따이한 아버지 찾아주기' 
일환으로 캄란지역에서 발굴한 내용입니다. 아버지 이름 영문표기로 봐서 이재휘/이창희 같기도 하여
빈넬회사에 다녔던 이창희 씨를 찾아냈으나 본인이 아니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관계자 여러분, 힘내시고 다시한번 처음부터 시도해 봅시다. 호주의 이윤화 전우님 수고 많으십니다.




58.186.133.2 김성찬: 오늘도 말없이 뒤에서 후원해 주시는 전우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림니다,오늘 바다건너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세딸들의 아버지와 큰어머님?께서 큰딸의 갑상선수술을 했는지 걱정이되여 딸들과는 대화가되지않아서 저에게 전화하여 딸들을 걱정하시는데 아버지는 당연하겠지만 큰어머님? 이 더 걱정을 하시더군요,세딸들을 대신하여 제가 고맙다는 인사를 드림니다, 우리가 찾고자하는 분 들을 모두를 찾을수는 없겠지만 찾을수있을때까지 전우여러분들의 협조하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sai gon 에서.9988 -[07/11-21:31]-


58.186.133.2 김성찬: 요즘 몇일째 한전우 컴퓨터가 또 말썽이네요,adsl도 말썽인데 바이러스 까지 잡수셨다나요,컴퓨터가 말썽이많아 사는게 재미도없고 죽을맛이라더군요!!!...... -[07/11-23:56]-


124.184.121.235 pat430: 호티 킴론양의 아버지 찾기를 다시 시도하겠습니다 . 이곳 호주에 많은 사람들이 파월당시의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 가까운 관계의 전우 ? 아니면 기술자들이 주고받는 말들을 전해듯고 있습니다 . 남자들이 외지에서(젊은 나이) 혼자 생활했겠습니까 ????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 그렇다고 아버지를 찾는 사정을 보고서 모른체할수는 없고해서 고민들을 하는것 같습니다. 하여튼 김성찬 한호성 서울의 최진현전우님 계속하십시다.. 저도 열심히 하렵니다... 김전우님 큰따님의 수술이 잘되었다니 다행입니다 . 그분들 정말 하느님의 은혜를 받으신 분들 같아요. 어머니가 더 훌륭하시다니까요......==호주에서== -[07/12-07:37]-


124.184.121.235 pat430: 김성찬선배님의 댓글을 올립니다. 한호성전우에게 전해주세요... 요즘 우리들 나이에 재미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컴퓨터가 고장이면 고치면 될일이고, 요즘 호지민의 거리에 꽁까이들의 오트바이 행렬을 보고 . 그리고 나짱의 해변에 비키니 아가씨들이 지천에 깔렸는데... 욕심을 버리라고 하시지요 ... 하여튼 다시 시작하시지요... 캄란의 길영국씨 손녀들 학비는 8월 초에 송금한다고 전해주십시요==호주 할배가 올렸습니다== ++요즘 식당에 가면 할배 이쪽으로 앉으세요 하네요++ -[07/12-07:50]-


최진현: 사이공 소식이 잠잠해지면 혹시 몸이 불편하여 눕지나 않았는지 그런 걱정이 앞섭니다. 김성찬님께서 한호성 전우의 근황을 알려주시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호주의 이윤화 전우님, B씨의 3딸 큰어머님?이라고 해서 좀 햇깔렸는데...세상엔 참 마음씨가 넓으신 분들이 많은가봐요. 으젓한 큰딸이 목에 혹이 생겨 고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안타까웠는데 큰어머님 가족의 도움으로 수술을 잘 끝내고 회복중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으니 참 흐뭇해 집니다. 호주의 이윤화 전우님 후한 마음쓰심에 감사드리며 위의 호티킴론양의 소원도 한번 풀어줍시다. 이치휘/이지회/이재휘 여러방면으로 수소문 해 봅시다. 미국회사 빈넬에 근무하셨던 분들이 협력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현재 가정사에 곤란이 있다면 아버지께서 가족몰래 딸에게 전화라도 한통화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계속 찾고 있기때문에 나중에 메스콤 추적으로 방영이라도 된다면 덮어둘 수도 없게 됩니다. 피한다고 뭍혀 지는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07/12-08:21]-


222.253.0.237 베트남 캠프: 비슷한 이름 들을 동시에 알아 보아야 겠습니다 ! -[07/13-01:59]-



 
이름아이콘 남까페
2007-12-30 21:05
찾는다는소식에  잠시옮겨다놓았습니다...
베트벳게시판15페이지 14612에있습니다.
ho thi kim loan   (영사관에  아버지찾아달라고 사연 띄운 이세딸...
   
 
  49
작성자 최진사
작성일 2007-04-13 (금) 18:20
ㆍ추천: 0  ㆍ조회: 295    
IP: 220.xxx.155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543.22
“ 지금도 라이따이한은 늘어만 간다. ”



● 라이 따이한 (Lai 大韓)

 

월남전에 함께 진출한 민간회사의 기술자와 현지여인이 살림을 하면서

생긴 자녀들이 대부분이고, 대민접촉이 잦는 일부 한군인의 자녀도 더러있다.  

전쟁의 패배속에 공산화된 지역에서 그들은 냉대와 가난속에서 버티어야만 했다.

그로부터 35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 아버지를 찾는 한인2세를 만나게 된다.


 

◑ 新라이 따이한(1)

 

이제 전쟁은 기억속에서도 멀어져 가지만 또 다른 한인2세가 양산되고 있다.

1992년 베트남이 개방되면서 들어간 한국인들이 현지처를 얻어서 자녀를 낳았다.

늘어가는 이 한인2세도 파악은 안되지만 앞으로 문제가 될것같다.

간혹 교통사고나 풍토병으로 남편이 하늘나라에 갔다는 불행한 소식도 들린다.


 

◐ 新라이 따이한(2)

 

한국 농촌총각들의 돌파구인 베트남 처녀와의 결혼이 공공연히 진행된다.

그들의 생활이 원만하다해도 2세는 태어나자마자 한국말이 서툴게 되어있다.

어린이는 엄마로부터 언어를 습득하게 되기때문이다. 이래저래 자라면서

또래들에게 튀기라고 왕따나 당하지 않을런지 그것도 우려된다.  


 

♥ 사랑의 손길

 

베트남을 찾는 한국인들은 그곳 따이한의 사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상당수 한인2세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한국 아버지도 공산화 되는 패망한 월남을

탈출한 후 다시 가지 못한 회한이 나이 들면서 더욱 가슴아픈 기억일 것이다.

 

베트남전쟁 종전이후 그곳에 남겨진 한국인 혼혈2세들인 라이따이한...

그들의 뿌리찾기 문제에 대해, 파월용사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환기합니다.

불행한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하려면 이산가족이 상봉하게 도와주는 길입니다.
 

처음은 미미하지만 진행하다보면 보람을 찾을날이 있을겁니다.

동참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름아이콘 신현철
2007-12-15 12:12
막판에 파원한사람중 한사람으로서 더욱 애착이 가는군요. 중국 상해서 마음으로나마 적극 지원합니다. 언젠가 꼭 베트남에 갈것입니다. 가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48
작성자 최진사            
작성일 2007-04-04 (수) 12:58
ㆍ추천: 0  ㆍ조회: 315    
IP: 220.xxx.155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488.22
“ [시리즈-10] 베트남 아내에게 쓰는 편지 ”
베트남의 아내에게 쓰는 편지
내이름은 라이따이한/ "딸의 한국행을 서둘러주시오"

 

박성흠 기자 jobin@kidokongbo.com      

 

베트남에 아내와 딸을 남기고 온 아버지가 보내는 편지도 입수됐다. 서울에서 암과 투병하는 한 아버지는 베트남의 딸을 초청하기 위해 수속을 밟으며 사랑을 담은 편지를 보냈지만, 그는 결국 딸을 초청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딸은 한국으로 오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사랑하는 아내 수금(秀琴:남편이 아내에게 지어준 한글이름)에게

오늘 베트남제일은행으로 2백달러를 송금했소. 최근에 나에게는 암이 재발해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르오. 하지만 나는 내 병에 대해서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오. 지금은 서울에서 사업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지만 시간이 좀 걸릴듯하오.

몇 일 전에는 딸 미영(가명)이를 서울로 데려와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학교엘 다녀왔소. 미영이가 한국에 있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우편으로 서류를 보낼테니 준비해주시오. 내 생각에 미영이는 사이공(호치민)에서 대학을 마친 뒤에 서울을 오는 것이 좋을 듯하오. 당신도 알다시피 한국의 내 아내에게 미영이의 이야기를 했고 아내는 베트남의 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오. 하루속히 미영이가 서울에 와서 함께 살 수 있기를 기대하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미영이가 영어 시험에 합격해야 하오.

조만간 다시 전화하리다. 난 결코 당신을 잊지 않고 있다오, 당신은 내가 베트남에 있을 때 너무나 잘해주었잖소. 늘 언제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소.

추신 : 사랑하는 딸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가능한한 빠른 시간 안에 꼭 서울에 올 수 있기를 바란다. 서울에서 아버지가 사랑을 보내며. 1995년 6월14일.



※ 이 편지는 영어로 작성됐던 것이며 개인신분을 노출할 수 없어 가명으로 처리했다.

 

(출처:한국기독공보 / www.kidokongbo.com )     입력 : 2006년 02월 21일     


 
이름아이콘 마틴리
2010-08-11 15:36
이남원 전우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금 늦었더라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책을 세우고, 준비를 하여야, 5000년 문화 민족으로서의
긍지가 살아날것 같읍니다.베트남전은 우리한국의 경제기반을닦는데 그 초석이되었던것 부인할수없는 역사이기도 하구요...,이전우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47
작성자 한호성            
작성일 2008-08-05 (화) 00:16
ㆍ추천: 0  ㆍ조회: 1547    
IP: 118.xxx.153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2891.22
“ 이세들을 위한기도... ”
     
김 로안  사진의 이세는 부모를 찾기 위해  오래전부터
노력하고  영사관에도 부모 찾아달라는  사연을 여러 번 띠웠던 이세로서  캄란에서 노부모와 살며 직장을 다니며 일을 하고 있지만  너무 어려워 아직 남은 이세 찾기 성금으로 어머니에게 1.000.000동을 지원해주었습니다.
이세들이 여럿인 관계로  사진을 찍지는 못하고  몰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상당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고 노부모는 건강하지도 못하고  생활고에 찌들어 보였습니다...



캄란 소찐 수진마을에서  목사님들과 이세들...


 
여기에 나온 이세들은 사진도 올렸지만  부모를 만나지 못하고 영사관에까지 부모를 찾아달라던 김 로안 어머니가 대신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캄란까지 온 것은  이세들의 실태파악 보고 느끼는 차원이라  모두 얼굴이 밝지 못하고  새벽 05시에 출발 10시간 만에 도착  피로가 겹쳐 즐겁지는 못하고 이세들에 대한 기도를 하고   잠자리 없어 냐짱 에 가서  하루 밤 보내고 다음 날 바로출발  사이공에 도착하였습니다... 


 
  46
작성자 한호성            
작성일 2008-07-21 (월) 23:05
ㆍ추천: 0  ㆍ조회: 1261    
IP: 58.xxx.157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2858.22
“ 전적지 주먹밥먹든 곳.../ 철없는것들... ”

 


신병장의 죽음이라는 수기를 쓴지 오래되었지만  그날 그때 장소는 변함없이 41년 세월 지 낫지만 지금은전형적인  시골마을 앞에 강물은 카이 강 이라하며 우측으로 흐르면 동해 뚜이 안 이며 좌측으로 흐르면 동 수안  죽음의 계곡까지 흘러가는 강물  50고지도 안 되는 산  1967년 3월 말경 오작교 작전초기 귀국 일주일 앞에 두고 전사 첫 발생 지역  순수 한 민간으로만 알고 인솔 중  걸레와 함께 손에 쥔 수류탄을 터트린 탓이 엇다.


전쟁터의 군인 이라 해서  냉혹한 현실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군인이기 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냉혹한 죽음의현장에서도 아름다운 사연이 많고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아름다움 그 날 밤 신병장이 전사했고 전사한 50고지에서  오늘밤 야영을 하게되어있어  현제까지15일정도 그동안 밥알하나 맛보지 못한

병사들에게 힘내라고 주먹밥에 생된장을 넣어  위험해서 헬기가 안착은 못하고 연대 인사계가  C레션 박스에 넣어  공중낙하해주고 헬기는 사라져 가고 지겹도록 먹어대든 C레이션만 먹다. 주먹밥에 생된장이지만  그 맛은  꿈같았으며 입에서 살살 녹는 맛 지금도 잊을 수 가없어...
이렇게 맛있는 밥을 먹고 임시 개인호를 파고 야영 중에 불과 애 낳은 지 몇  일박에  안 된 산모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다.

이런 상태라면 아랫마을 집에 있는 것이 상식이지만  전투가 시작되어  날이 새면 난민수용소에 넘기게 되어있어  오늘밤만 보호하면 된다.

그러나 아직 피부가 붉어 보이는 아이가 젖 달라고 보체 울고
해서 애 엄마에게 C레션도 주어보고 밥을 주어도 먹지 않고 고개를 흔들어 먹지안고 말 안통해도 애 젖 먹이려면 먹어야한다고 손으로 좁고 컴컴한 호 속에서 먹 어라 먹어라 사정을해도 안 먹 다가  주먹밥에서 생된장을 빼내고 흰밥과 어떻게 통했는지 레션에 들어있는 설탕에 밥을 찍

 

 먹게 되었는데 내가비록 19세의 어린 청년이지만 여자가 애를 낳게 되면 힘들고 당분간 활동이 어렵고  미역국을 먹어야하는  환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  다행으로 밤 세도록 정성을 다해 그 애 엄마에게  포기하지 않고 밥을 먹여준 것이 41년 전  오늘 이장소를 지나는 길에 새삼 떠올라  사진 속  전장의 공포 속에서도  인간의 삶  적이 아닌 이상  가족 같은 정도 있 엇 다는 것  그 여인이 살아있고 그 애가 살아 있는지 생각이 난다...



그때 여인 산모의모습...



철없는 것들의 당황하는모습...



내용을 아는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사연...

폭탄선언...

그동안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라는 것을 망각하고 언제까지나 대학을 졸업 할 때까지로 착각을 했는지

무작정 캄란지방에서 어느 나라 도시이든 눈뜨고 코 벼 가는 세상 알지도 못하고 사이공이라는 도시에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공부 하겠다  상경 한 것이다.

사내아이들도 아니고 태여 나서  험한 세상에 발을 디딘 것이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우리 둘뿐인데  설마 도와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사이공에 온 것이다.

공부하려고 하는 마음은 좋지만 방세며 식생활 학비는 너 이  들이 어찌하려고 물어봤을 때  호주의 이 할아버지가 보내주는 돈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돈이 오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우리가 직접 전하지 못하고 삼자를 통해 옆에서 지켜보며 이 말을 전해주는 순간  절망감을 느꼈는지  표정이 아주 심각하다.
 하지만 살아있는한 절망은없고  꿈을꾸면 희망이있다고  달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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