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적지여행의 체험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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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세월이 훌쩍 흘러
아련한 그리움이 있는 땅
내 마음의 그리움을 찾아 떠난다
설레임에 가슴벅찬 베트남 전적지여행
       
 
라이따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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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까페            
작성일 2007-04-28 (토) 22:11
ㆍ추천: 0  ㆍ조회: 249    
IP: 58.xxx.83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645.22
“ 다시한번 만남의 행운을 빌어봅니다.. ”






 


베트남:Vo Thi Ai



아들 홍 수진  지금은 엄마 성을 따서 Vo Hong Chin이라고 부릅니다. 생년월일: 1973년 백마 30연대 52포병 1971년부터1972년 근무 홍 광 표 씨 표를 찾습니다. 돼지띠 1947년생








보 티 아이 여인 이야기 는 홍 광 표 씨가 1972년 귀국하고 이후 1975년까지 송금도 해주고 아이를 안고 찍은 사진도 보내 줬다함 1975년까지 연락을 주고받다가 1975년4월30일 이후 연락두절 5일후면 33년째 4월30일 이 땅에선 누구도 비켜갈 수 없었던 슬픈 역사가 한 페이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잘못된 커다란 소용돌이가 시간 속으로 역사가 스쳐가며  만들어진 비극 생이별이란 문제를 낳았을 뿐입니다.





1973년 홍 광 표 씨 아드님  홍 수진 간난 아기시절...






현제 홍 수진 보 홍진이 성장해서 결혼 하고  며느님 손자 손녀가 있다고 함







30연대 정문 앞 사진관에서 경리일을 할 때 모습 1971년부터 1973년 까지 부대 앞 사진관에서 일하며 맡긴 사진 나오면 부대에 가져다 주고 돈을 받는 일을 했다함 이름:Vo Thi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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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호성            
작성일 2007-04-26 (목) 23:29
첨부#1 bad2b0edc0dabad2b0ed.jpg (75KB) (Down:15)
ㆍ추천: 0  ㆍ조회: 149    
IP: 58.xxx.96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633.22
“ 불타던 전쟁터의 산천은 푸르고 꽃이 피었지만... ”

불타던 전쟁터의 산천은 푸르고 꽃이 피었지만  연약한 한 인간에게 전쟁이라는 불행의 흔적을 이 여인에게 고스란히 남겨 고통을 느끼게 하고 있다. 바로 우리의 이세이다.
고엽제인지 선천성인지는 잘 모르지만 불고의 몸이다.
이 이세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여기에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다

고향이 안 캐 이며  아버지의 신상을 알길 이 없고  노동을 하고 싶어도 불고이니 먹고사는 것도 힘들다 . 다행이 한국의 선교활동으로 주선되어 지금 호치민의 이세 까 페 에서 생활하고 있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미소 없는 눈빛 사이에 원망이 가득해보이고 바라보는 사람을 슬픔에 젖게 만든다.
한 핏줄이라는 것 때문일 것이다.

행여 조사해서 신상이 나오면  아버지 찾기를 띠우겠지만 지금은 희박하며  6월에 모 방송에서 인터뷰 해 가갔으니  무슨 표시가 있어 하소연 했는지는 잘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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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까페            
작성일 2007-04-19 (목) 10:51
ㆍ추천: 0  ㆍ조회: 182    
IP: 220.xxx.155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585.22
“ 라이따이한의 통곡 ”
파월기술자 방YS씨의 막내딸 Thai 양...생전에 그리던 아버지의 음성을 태어나서 처음 듣다.

극적인 사연...

1975년 1월, 베트남에서 미국회사에 근무하던 방씨는 두딸과 부인을 데리고 회사 근무지따라 태국 방콕에
건너가서 4개월 정도 생활하다가, 사이공 은행에 조금 남은 돈 때문에 그 돈을 찾으러 부인이 두딸을 데리고  
막내딸은 임신하여 배부른 상태로 1975년4월28일 사이공에 도착했으나 이틀만인 1975년 4월30일
자유월남이 패망하여 사회주의 체제가 되는 바람에 32년 세월동안 생이별하게 된다.



부인 이름은 NGO THI PAN THU ANH (1979 사망)
큰딸 Trang 1971년생, 둘째딸 Diem 1972년생, 셋째딸 Thai 1975년생...사진은 둘째딸.


공산화된 지옥같은 베트남 땅에서 세아이를 키우던 부인은 1979년 39세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만다.
공산치하 그 고난의 4년 동안에 부인의 삶 속에 많은 시련과 고통과 한을 안고 세상을 떴을 것이다.
그리고 32년후 오늘 2007년 4월19일 베트남시간 오전 11시, 한국시간 13시, 호주시간 14시에 극적인
부녀지간에 전화 통화가 이루어져 호주와 베트남이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같은 라이한 처지인 베트남 김상일씨가 한국말 통역을 맡았습니다. 호주의 아버지 옆에도 월남말 통역을 하는 분이 계신다고 합니다. 눈물에서 눈물로 50분간 통화를 하였습니다. 헤어질때 뱃속에 있었던 셋째딸 입니다.



셋째딸  : 아빠 보고싶어요  엉 엉 엉 ...말을 하지 못한체...아빠사랑해요...엄마는 하늘나라에 있어요.



호주 아버지 : 그래 나도 보고싶다 내 딸들아....소리없는 흐느낌......



호주 아버지 : 이제 아빠가 너희들에게 못다한 사랑을 줄것이다. 그리고 빨리 상봉할 수 있도록 하겠다.



셋째딸 : 아빠 아무것도 필요없으니.. 빨리 아빠의 얼굴을 보고 싶어요...



호주 아버지 : 그래...그래...계속 흐느끼는 소리..... 김상일 씨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엉엉 운다.
라이따이한 김상일씨는 한국에 아버지를 찾았으나 아버지의 문전박대를 당하고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이 모든 것은 vietvet 사이트가 없었다면 불가능 한 일...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사람 너나없이 국적관계 없이 어린아이도 함께 울었습니다.
이제그만 다음세대에는 이런 슬픈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비록 현재부인이 알아진다해도 지금의 기반은 이 사람들이 먼저였음을 알아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촬영: www.namca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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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진사    
작성일 2007-04-13 (금) 18:22
ㆍ추천: 0  ㆍ조회: 326    
IP: 220.xxx.155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544.22
“ 라이따이한의 만남을 지원합시다. ”

베트남 송금은 한 件마다 해외 송금료가 많이 들어 최진현 통장으로 취합해서
한호성 통장으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해외에 계시는 분은 한호성 통장으로 바로 보내셔도 되겠습니다.
거래하시는 은행 예금창구에 가셔서 자동이체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면 간단히 해결해 줍니다.
(자동이체 날짜와 기간(2007.5월~2008.5월)/월납입금:일만원씩/이체수수료:300원)

이체계좌:

신한은행 110-213-288521 (최진현)

* 한호성 / 신한은행 238-68-292393 (신한비나 호치민지점)
      (이름: HAN HO SUNG / SHINHANVINA HOCHIMINH)


여러분의 뜻을 받들어 보람된 일에 쓰겠습니다.



라이따이한 찾기 애로사항

 
 ☞ 파파정 휴게실 벽에 붙어있는 라이따이한 활동 기록사진들.
 

지나간 세월속에 드러워져 있는 어두운 부분이 베트남의 한인2세 라이따이한 입니다.

사람의 기억은 세월속에 묻어 버릴수 있지만, 한국인2세는 현실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라이'(Lai)의 뜻은 '튀기'를 의미합니다.

라이따이한은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를 둔 한국인2세를 말합니다.

라이따이한이 생기게 된 배경 바로 옆에는 월남전이 있었습니다.

 

언뜻 월남전에 갔던 군인들을 생각하겠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군인들은 전쟁중이었고 부대 철조망 바깥으로 나가면 죽음이었습니다.

주로 월남전에 와 있었던 한국인 기술자 그리고 파견인이 월남여인과 결혼 했습니다.

파악된 바 로는 군인 아버지도 1% 정도로 군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베트남 사이공 현지에서 정주섭(파파정/72)선생이 휴게실(식당)을 운영하며

국내 종교단체 및 독지가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기술교육 및 취업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만, 경제적인 문제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한호성전우와 김성찬전우가

한국인 아버지를 찾는데 협력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어려움이 있다고 메일로 알려 왔습니다.

 

예를 들어, 자식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사진이나 예전 주소를 가지고

며칠동안 교통비등 경비를 들여 여러 동네를 뒤져서 물색을 하지만 35~40년이 지났고

그동안 사회주의체제로 변했으니 찾기가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찾지못할 경우에는 모든일이 헛수고로 돌아가서 모든 경비가 그들의 부담이 된답니다.

그래서 찾고싶은 사람이 베트남으로 직접 오라고 하는 이유가,

못찾더라도 찾는 경비만은 본인들이 부담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한호성씨와 파파정, 김성찬씨, 김상일씨, 그리고 통역하시는 분, 운전사등이 동원되어

찾아보지만, 사람찾는 일이 쉬운일이 아니란걸 알게 되었습니다.

못 찾으니 허탈해져서 다음에 그런일 부탁이 들어와도 꺼리게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이번에 군번줄 증표로 한국 아버지를 찾았지만 이번일도 서로 연결을 시도하면서

느끼는 일이지만 진행상 어려움이 많군요. 어렵게 찾아 냈지만 이들을 상봉 시키는데까지는

아직도 첩첩산중입니다. 우선 충남 산골에 사는 아버지와 캄란에 사는 아들과 부인을

확인시키는데도 사이공 인원을 캄란으로 보내서 설명하고 확인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군요.

 

파파정께서 2박3일 경비를 줘서 캄란에 사람을 보내긴 했지만, 그쪽 형편이 어떤지?

그리고 충남 산골의 아버지는 건강도 좋지않고 한국부인의 동의도 받아야하고,

한국의 자식들 지원을 받아야 베트남 비행기라도 탈 수 있는데...이거 보통 어려운게 아닙니다.

 

그래도 이 일을 포기 할 수는 없고해서 전우님들께 상의 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

한국내 일은 어떻게 한다고해도, 베트남에서 일을 진행시키기 위해서 경비조달을 해보자는 겁니다.

한국의 뜻있는 전우들께서 한달에 10,000원 정도씩 베트남에 지원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동의하시는 전우들이 계시면, 제 생각은 한호성 전우에게 신한은행(베트남지점 있슴)에

구좌를 트게 한다음, 한사람이 자동이체로 한달에 10,000원씩 1년정도 넣는 켐페인은 어떨까요?

 

그 돈으로 한인2세 찾아주는 경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베트남 한인2세 가족들의 생활은 대부분 상당히 어렵습니다. 공산통일후 신분노출 때문에

숨어 살아야했고, 혼혈아 왕따를 당해야 했고, 국가 의무교육도 제외되어 교육도 못 받고...

그러니 취업은 더욱 어렵고, 참으로 어려운 과정을 거쳐 이제 35세 정도가 되었으니

어떻게 혼인을 하고보니 손자들의 할아버지가 보고싶어 찾는답니다.

 

파월전우들이 전적지에 찾아가면 라이따이한 가족을 만나게 되는데, 한국 아버지를

찾아주고 싶어도 그것도 찾는일이 어려운건, 무슨 증표라도 있어야 하는데

부정확한 이름(월남 발음) 하나만 가지고는 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베트남의 코리아타운 팜반하이...

베트남 이산가족을 찾아주려고 노력하시는 이 분들의 숭고한 뜻이 좌절되지않게

도움을 주었으면 합니다. 그일을 할 수 있도록 한호성 전우라도 밀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뜻을 들어본 다음 추진을 해볼까 합니다. 아직 최진사 혼자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 www.namcafe.co.kr "라이따이한" 게시판을 읽어보십시요.



59.5.134.141 강 병장: 강 병장은 초창기라 외출 외박은 꿈도 못꿨는데...최진현씨 생각과 같은데... -[04/12-12:27]-
210.108.20.122 최현득: 좋은 제안에 동감을 표합니다 앞장선다는게 어려울텐데 감사 합니다 저도 동참을 하겠습니다 -[04/12-13:45]-
122.46.0.23 류지현: 조금이나 보탬이 된다면 동참 하겠습니다. 아주 좋으신 생각이십니다. -[04/12-15:40]-
222.117.39.66 후손: 저도 전투감각이나 주월사령관을 지내신 채명신님의 베트남전과 나 그리고 산자의전쟁죽은자의 전쟁을 통해본 베트남...대한민국의 근대사에 빼놓을수 없는 역사의 장속에 전적지 등을 둘러보고 싶으나. 바빠서 도저히 엄두가 안나고., 등등 이후손 기꺼이 참여 하겠습니다!!!!!!! -[04/12-19:01]-
219.251.102.17 참전인: 참전했던 사람으로서 저도 기꺼이 참여하겠습니다. -[04/12-20:20]-
219.250.26.168 백하사: 좋은 생각입니다.진사님과 같은생각... -[04/12-20:52]-
58.168.83.124 pat430: 최 진현 전우님의 뜻에 적극 동참하겠습니다 금년 안작데이 행사에(4월 21일 부터 ~ 27일까지) 채 사령관님 내외분을 비롯하여 총 10 명이 호주를 방문하시어 참여하시게 되었습니다 이번 행사중에 전우들에게 최 전우님의 뜻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호주에서) -[04/13-06:07]-
211.201.213.234 노량진 : 네 참여하겠 읍니다 -[04/13-08:24]-
61.84.244.31 和順전우: 도움이될 수 있다면 기꺼이 참여 하겠습니다. -[04/13-09:54]-
125.143.165.146 최성영: 쥔장님이 추진 하신다면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04/13-10:10]-
최진현: 여러분께서 적극 밀어주시니 추진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호성님과 알아보니 사이공 신한은행통장은 있지만 한국에서 베트남 송금수수료가 한 件마다 붙어서 배보다 배꼽이 크답니다. 그래서 한국내에서 통장을 만들어 취합하여 모이면 한꺼번에 송금하는 방식으로 처리할까 합니다. 통장을 만든다음 통장번호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모든일은 투명하게 처리하고 공개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이 있어서 보람을 느낍니다. -[04/13-10:19]-
124.216.36.103 권용학: 추진을 해 보세요. 조그만한 힘이나마,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21일 울산 행사에 참석 하신다면 019-511-4147로 꼭 뵈옵겠습니다. -[04/13-12:03]-
211.229.20.230 야은손: 좋은 일에 동참 하겠습니다.참전인 2세까지 신경쓰신 진사님은 영원한 베트벳입니다. -[04/13-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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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진사
작성일 2007-04-13 (금) 18:20
ㆍ추천: 0  ㆍ조회: 295    
IP: 220.xxx.155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543.22
“ 지금도 라이따이한은 늘어만 간다. ”



● 라이 따이한 (Lai 大韓)

 

월남전에 함께 진출한 민간회사의 기술자와 현지여인이 살림을 하면서

생긴 자녀들이 대부분이고, 대민접촉이 잦는 일부 한군인의 자녀도 더러있다.  

전쟁의 패배속에 공산화된 지역에서 그들은 냉대와 가난속에서 버티어야만 했다.

그로부터 35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 아버지를 찾는 한인2세를 만나게 된다.


 

◑ 新라이 따이한(1)

 

이제 전쟁은 기억속에서도 멀어져 가지만 또 다른 한인2세가 양산되고 있다.

1992년 베트남이 개방되면서 들어간 한국인들이 현지처를 얻어서 자녀를 낳았다.

늘어가는 이 한인2세도 파악은 안되지만 앞으로 문제가 될것같다.

간혹 교통사고나 풍토병으로 남편이 하늘나라에 갔다는 불행한 소식도 들린다.


 

◐ 新라이 따이한(2)

 

한국 농촌총각들의 돌파구인 베트남 처녀와의 결혼이 공공연히 진행된다.

그들의 생활이 원만하다해도 2세는 태어나자마자 한국말이 서툴게 되어있다.

어린이는 엄마로부터 언어를 습득하게 되기때문이다. 이래저래 자라면서

또래들에게 튀기라고 왕따나 당하지 않을런지 그것도 우려된다.  


 

♥ 사랑의 손길

 

베트남을 찾는 한국인들은 그곳 따이한의 사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상당수 한인2세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한국 아버지도 공산화 되는 패망한 월남을

탈출한 후 다시 가지 못한 회한이 나이 들면서 더욱 가슴아픈 기억일 것이다.

 

베트남전쟁 종전이후 그곳에 남겨진 한국인 혼혈2세들인 라이따이한...

그들의 뿌리찾기 문제에 대해, 파월용사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환기합니다.

불행한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하려면 이산가족이 상봉하게 도와주는 길입니다.
 

처음은 미미하지만 진행하다보면 보람을 찾을날이 있을겁니다.

동참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름아이콘 신현철
2007-12-15 12:12
막판에 파원한사람중 한사람으로서 더욱 애착이 가는군요. 중국 상해서 마음으로나마 적극 지원합니다. 언젠가 꼭 베트남에 갈것입니다. 가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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