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적지여행의 체험정보
www.namcafe.co.kr 남까페
40여년 세월이 훌쩍 흘러
아련한 그리움이 있는 땅
내 마음의 그리움을 찾아 떠난다
설레임에 가슴벅찬 베트남 전적지여행
       
 
라이따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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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까페
작성일 2007-08-31 (금) 11:04
ㆍ추천: 0  ㆍ조회: 261    
IP: 58.xxx.140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1184.22
“ 아버지 김남동씨를 찾습니다.. ”


아버지 김 남 동 氏 을 찾습니다.

Cha: KIM NAM DONG (1936~1937년생 정확치안음
아버지는 truc Kia lam co,so (RMK)라는 간판의 이름으로 회사인지 상회인지는 정확이 모릅니다. SON TRA  Da NANG  퀴논에도 작은 간판이 있었고  다낭에는 규모가 약간 큰 RMK라는 회사이름을 운영하셨습니다..



 
Me: Le Thi Hong Nga=어머니 이름
Chi; Le Thi Minh  41세의 누님 큰딸
Con trai: Le Van Dung 아들 39세입니다.
Em Trai: Le Van Tanh 셋째 37세 아들

어머니
영전앞...




생전에
어머니의 유언장 아버지사진 뒤..


 

 


35년 전행복했던시절 ...



큰  아들 현제 가족...



아버지  어느 하늘 및 에라도  건강하게 살아 계시다면하고 이불효자 들은  아버지의 건강을 빕니다. 아버지의 아들 둘과 딸 3남매는 힘들지만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35년 전 아버지와 이별 하신 후 어린 우리 3남매를 키우시느라 전쟁이라는 먹구름이 휩쓸고 간 폐허의 땅에서 가난의 늪에 빠져 굶주릴 때에도 어머니는 우리3남매를 키우시느라  온갖 중노동을 하시며 그렇게 해서 받은 돈이래야 끼니 때우는데도 부족한 시대를 사시면서 고픈 배를 움켜쥐며 우리3남매를 키우시느라  온갖 희생하시면서도  아버지가 언제 돌아 오실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사시다가 끝내 생전에 아버님 의 얼굴을  보시지 못하시고  하늘나라로 먼저  가셨습니다.  하늘에 개신 어머니께서도  아직 눈을 감지 못하셨을 겁니다.  아버지 살아 게시면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우리들도 철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습니다. 우리도 더 이상 아버님 보고 싶은 얼굴을 잊을 수가 있다지만  또 다른  할아버지를 궁금히 하는 아버님의 손자 손녀가 아버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님 오래오래 만수무강 하세요 
베트남 퀴논에서 큰아들 융 드림

 
  29
작성자 남까페
작성일 2007-08-30 (목) 00:03
ㆍ추천: 0  ㆍ조회: 228    
IP: 58.xxx.140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1177.22
“ 퀴논의 딸이 아버지를 찾습니다.. ”

맹호사단 김 성도氏를 찾습니다.
1943~1944년생이라는 것만 압니다.
Me: 어머니 Luong Thi Huong(르엉 티 흥
생년월일 1944년2월5일생
딸 성명:Luong Thi Le(르엉 티 레
1971년생 

꽃처럼
고왔던 시절에..

 


사연 1970년부터 1973년까지 한국군이 철수 할 때까지 맹호사단 식당에서 빵 급식담당으로 있을 때  만난 군인과의 사랑을 나눴다고 함  계급도 잘 몰라???
사진도 없다. 사단 내에서는  군인이 살림도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고 외부로 외출하며 다녔다 하더라도 그 같은 외출이 가능했을까? 또 3년 식이나?  (한 가지 중요 한 것은 35년 전 그때 그 자리에 35년을 행여 찾아  올까 기다리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Quy
 Nhon 역입니다...
 



계산을 해보면1944년생이 1970년도 베트남전참전 했다면 27세이고 1973년까지 있었다면 30세 사병은 아닌 듯 나이로 봐서 그렇고 중 상사 아니면 장교이거나 추측이지만 병도 그 나이가 가능 한건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근4년을 복무하고도 22세 때 재대 을 해서
전쟁터에서 사병이 30대는 노인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잘못 알고 있는지?  전우님들 생각은 어떠신지요.???  딸사

진은 아직 없습니다...

 
  28
작성자 남까페            
작성일 2007-06-27 (수) 23:03
ㆍ추천: 0  ㆍ조회: 330    
IP: 58.xxx.128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906.22
“ Choi Jin Hyun(Korea.. ”


한국의 큰아빠 최 진현 전우님 사진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아주 능숙해서 한번 가르쳐 주면 몇 가지를 챙길 정도 로 호주의 안작대회 사진도 한번 가르쳐 줬는데 사진을 마음대로 매인 창에 띠웠습니다.  이제는 최 진현 하고 발음을 정확히 합니다.
이름 한글생긴 것으로 찾아가서 사이트를 열어보고 있기 때문에  자유게시판도 뜻은 몰라도  같은 생김새 글로 찾아가 보고 있습니다.
컴퓨터 박사라고 했습니다.
사진을 보면  모자 쓰지 않은 모습만 보여  껀저 에서 찍으신 사진이 젊어 보이고 해서 딸들 옆에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 주기로 했습니다. 괜찮으신가요.






가장 이상적인 복장으로 어울린다고 생각되어 고른 것인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영어로 최 진현 맞습니까?
Choi   Jin  Hyun

 
  27
작성자 최진사    
작성일 2007-06-12 (화) 19:42
ㆍ추천: 0  ㆍ조회: 1249    
IP: 220.xxx.155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789.22
“ 라이따이한 이산가족 찾아주기 ”




6월9일부터 12일까지 베트남 사이공과 캄란에서는 상당히 분주하였으리라 짐작만 합니다.

호주에 사시는 B씨 가족(4명)이 캄란에 사는 세딸집을 방문하여 상봉하는 날이었습니다.

호주 B씨의 요청으로 공개를 하지 않아서 궁금증이 생기지만 대략 짐작은 갑니다.

 

만남의 감격으로 잠시 눈물을 흘렸을것이고, 세딸들의 표정은 그 어느 순간보다

환희의 순간을 맛보았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호주 아버지도 이제 마음에 무거운 짐을

벗어놓았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기쁨의 순간을 만들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동안 한호성 전우님, 김성찬 전우님, 호주 이윤화 전우님, 파파정 정주섭 선생님,

HAN LAI 김상일씨, 통역담당 강희조씨, 은남식당 송사장님...

고마운 마음씨의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베트벳 이상가족 찾아주기 후원금을 보내신 모든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이런 상봉의 기쁨은 여러분들의 아름다운 마음의 결정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특히 "강희조" 사장께서는 이번 상봉 주선에 통역을 맡아 큰 수고를 하셨는데도

표면에 나타나시지 않아 조금 미안하지만,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베트남 사이공에서 서로 칭찬만 하고 있으니 누가 더 좋은 사람인지 구별을 하기 힘듭니다.

여러분들께서 아래의 글을 읽어보시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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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본 자랑스런 한국인 맹호, 백마 참전용사

 

                             강희조 khjhcm@yahoo.co.kr   2007. 4. 21.

 

베트남 호치민에서  한국 식품점을 12년째 운영하고있는 '강희조'라고 합니다.

항상 겸손하고 자신감있는 멋진한국인 백마부대 참전용사 김성찬님 , 맹호 부대 참전용사

한호성님께 경의의 박수를 보냅니다.

베트남 호치민에는 별의별사람 모여 살지만 남의 일에 헌신적으로 자비의 경비를 많이

써가면서 오늘  32년만의 부녀간의 상봉자리를 순수한 인터넷 사이트로 주선하고

감격적이고 환희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너도울었고 나도울었고 동네사람들도 울었고 듣는사람도 울었고 모두가 울어버렸습니다.

나는 한참 젊은 사람이지만 맹호 ,백마 출신의 남다른

전우애와 형제보다 더친한 듯한 전우회원 간의 믿음과사랑 신속한연락 네트워크 모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들에게 사이공 인터넷 특파원 영웅 칭호를 드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만세 !!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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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찬: 저는 별로 한일도 없는데 너무 비행기 태우면 떨어 집니다, 이번 부녀간 상봉의 베트남에서의 역활은 한전우님이. 한국에서는 최진사님을 비롯한 모든 전우님들의 성원과, 호주의 이윤화전우님 그리고 호주전우 여러분의 뜻이 한 마음으로 뭉쳐져 무사히 상봉을 할수 있었다고 봅니다, 몇일동안 우리 한전우님 고생 너무많이 했습니다, 이모든 과정을 자신의 일 인양 건강치못한 몸으로 동분서주하고 늦은밤까지 컴에 매달리며 밤잠 설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늘밤에는 두발 쭉 뻗고 편히 주무시기 바람니다, 한전우님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베트벳의 모든 전우님들 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림니다. -[04/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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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성: 작은 가능성 %속에서도 유일하게 베트남에 진출해서 성공 하신 젊은 강사장 베트남어 통역에 1인자인 강사장 께서는 이번 전우 찾기에 힘쓰신분으로 일주동안에 캄란 이세 찾기 활동으로 캄란 경찰서및 이세들간에 동태를 파악해 주셨습니다.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미결의 가족찾는일에 적극 협조적이며 어제 호주와의 통역을 해주신 강사장님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어려운 언어 문제 장벽이 있을때 도움 청하겠습니다. 강사장은 고향이 서귀포이며 판반하이에서 식품점을 경영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04/2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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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현: 강희조님 지난번 사진에서 뵈었습니다. 이번에 통역 연락해 주신다고 수고 하셨습니다. 모두가 장한 한국인들입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04/22-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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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상봉하신 가족들은 빠른 시간에 찾아질 수 있었던 행운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아직 빙산의 일각처럼 느껴지고 있습니다. 지금 베트남에서 한호성, 김성찬 전우님 그리고

여러 한인타운 관계자 분들께서 노력하고 계십니다. 그 분들께 성원의 마음을 보냅시다.

 

어제는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서울특별시회 김만수 회장님께서 격려의 말씀과 함께

금일봉을 송금해 주셨습니다.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 한호성, 김성찬 전우 두분이 사이공을 떠나 있어서 소식이 뜸하지만

내일쯤 사이공으로 돌아오면 베트남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올겁니다.

기다려 봅니다.








124.183.177.72 pat430: 최진현전우님 며칠 만에 들어와 보고 있습니다 사실 조금은 조심스러워서... 지난 일요일(10일) 한호성전우님과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그시간 김성찬전우는 B 씨 일행과 나트랑 호텔에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길영국씨의 아드님 길승호군과 두 손녀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딸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라고 또렷한 한국어로 인사를 하더군요) 아이들이 한국말을 배워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것 같았습니다 이곳에서 출발하신 B 씨 편에 약간의 보탬이 될수있는 금액을 보냈습니다 앞으로 매 2개월에 한번씩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김성찬 한호성 그리고 서울의 최진현전우님의 수고로 한국인들의 2세 3세 들에게 도움을 줄수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신것입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계속 돕고자 합니다 내일이면 B 씨 일행이 이곳 시드니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vietvet 최진현전우님과 도움을 주시는 전우님들이 계시기에 희망을 갖고 아버지를 기다리는 우리들의 자식들이 있다고 생각하시고 ... 아버지찾기 운동에 힘이 되도록 하셨으면합니다 .. 최진현전우님 내일 이곳 호주에서 서울을 방문하는 ? -[06/12-12:42]-
124.183.177.72 pat430: 전우 가족이 있습니다 지난 안작행사의 사진과 영상물(CD)을 보내겠습니다 받으셔서 Copy를 하시어 몇 분들게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곳을 방문하셨던 분들에게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요===호주에서=== -[06/12-12:49]-
최진현: 이윤화 전우님, 세상 모든것 명암이 있는데 이번일에도 밝은면과 어두운면이 존재할것 같아 저도 조바심이 생깁니다. 그러나 결국은 해피앤딩이 될거라고 믿습니다. 호주에서 보내오는 CD와 사진은 접수하는대로 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2세 3세를 도우는 일은 국내에서도 뜻있는 사람들이 조용히 추진해가고 있습니다. 먼저 도움의 손길을 주신 이윤화 전우님의 온정에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김만수 회장님이 이윤화 전우님 활약에 칭찬을 많이 하셨습니다. 여러면에서 감사를 드립니다. 늘 행운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06/12-13:06]-
124.183.177.72 pat430: 최전우님께 ... 이곳에서 밝힐수없는 사정때문에 ... 사실은 아버지를 찾는 사연중에 아이들을 찾은 전우가 있습니다 이름과 사정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으로 조용히 기다리고있습니다 최진현전우님과 김성찬 그리고 한호성전우님의 수고로 아버지를 찾은 가족들이 계속 있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현재 이곳의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재정지원을 시작했습니다 자식들에게는 고생끝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최전우님 길영국씨 자녀들에게도 좋은 소식을 기대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보내드리는 영상물을 이곳에 올려주셨으면합니다 부탁합니다===호주에서=== -[06/12-14:04]-
최진현: 1973년1월27일 휴전회담으로 연합군이 모두 철수하고, 1975년4월30일 자유월남 패망으로 적화통일 되면서 가족을 남겨둔체 외국인은 탈출해야했던 그시절 이산가족들이, 30년이상 세월이 많이 흘러 베트남 개방정책에 의해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버지는 그후에 다시 가정을 꾸렸겠지만 두고온 아들 딸 생각에 많이도 속이 탔을겁니다. 80년도 KBS 이산가족찾기처럼 공개해서 찾으면 훨씬 많이 찾을 수 있겠지만, 지금 베트남의 자녀들은 공산치하에서 고생하다보니 아버지의 흔적이 많이 훼손되어 증거물을 찾기 힘들고, 또 찾아진 경우라도 아버지의 한국가정 때문에 공개적으로 만나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최근 4가족을 찾았지만 2가족은 우리가 주선하여 상봉이 이루어 졌지만, 2가족은 직접 연락을 하며 도움의 손길이 보내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파악이 되어야 찾은 사람을 또다시 찾는 헛수고가 없을 것이므로 메일로라도 그 현황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윤화 전우님 영상물 받는대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06/12-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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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까페            
작성일 2007-05-28 (월) 15:32
ㆍ추천: 0  ㆍ조회: 176    
IP: 220.xxx.155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755.22
“ 한국인 2세가 사는 폐가를 찾아가다 ”



귀신 나올 것 같은 이집에 들어서는데 바로입구에  아버지 어머니 오토바이를 타다 죽었다는
남동생의 사진이 나란히 있고 향불 연기가 코를 찌르고 있었으며 그 영전 앞에 흐느끼는 여인이 있었다.

눈가에 이슬 맺힌 체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눈물을 보이지 안  기위해 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이들 엄마로서 마음 괴로워 부모의 영전 앞에 가슴 아픈 사연들을 눈물로 대신 하였나보다   
나는 직업의식 때문에 잔인 하게도 그 모습을 디 카에 담았습니다..  
 
......................................................................................

1975년 적화 통일되면서 남쪽의 패망으로 사실상 남쪽은 승자에게 모든 것이 압수되었다.
1975년 이전의 이 땅의 주인은 남쪽사람의 것이었고  1975년4월30일 이 후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재산과 생명 모두가 압수되었고 지금 우리가 베트남 사람이 돈을 주고 땅. 집. 을 산다 해도
영원히 내 땅. 내 집은 아니다. 주인은 결국 정부에 것이다.
우리들은 베트남에 관광을 하거나 베트남에 생활 하고 있어도 한국보다도 자유스런 느낌이다.
그러나 깊이 더 깊이 이집의 내막하나만 알아도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집에서 느낀 것은 한국에도 어두운 곳을 살펴보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베트남은 더더욱 많습니다.  모두다 정이 가지만 개인으로서는 해결이 불가능 한 것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 칠 수 밖에 없는 지구촌 인간사 사회문제이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며 살아갑니다.

베트남 참전 군인들을 경험했듯 전쟁터에서 적과대치중 싸울 때가 있었습니다 개인감정만으로는
격하더라도 목숨을 내던지며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개인을 위해 개인감정으로 싸운다면
사회악인 소위 깡패라는 덩치 큰 자가 세계를 제패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결코 개인 싸움이 아닌 민족주의적 정신 조국을 등에 업지 않고 죽음을 알면서
불속에 뛰어들 수가 없었습니다. 조국을 위해서라는 한마디 외쳤을 때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용감히 싸울 수가 있었습니다.



이 폐가에 들어와 사연을 듣고 차별적 느낌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개인적 인정이 아닌 민족적 분노였습니다. 숙이지 말고 더 강하게 분노하여  악착같이
살아갈 힘을 주고 싶고 있는 것 다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힘은 작 지만 아직 고사리 같은 아이들에게 한문 글 잘 몰라  "천만 불 여 박기 제신"  이 표기는
고척동 동양공전 바위에 새겨진 글 (천만 금이 있어도  한 가지 기술을 배우는 것만 못하다)에서
뜻을 떠올리며 고기대신 잡는 법을 가르쳐 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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