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적지여행의 체험정보
www.namcafe.co.kr 남까페
40여년 세월이 훌쩍 흘러
아련한 그리움이 있는 땅
내 마음의 그리움을 찾아 떠난다
설레임에 가슴벅찬 베트남 전적지여행
       
 
라이따이한  
       
   

Warning: Division by zero in /home/hosting_users/namcafe/www/technote6/skin_board/s_build_cafeblog/2_index.php on line 1232
  45
작성자 남까페        
작성일 2008-03-01 (토) 21:10
ㆍ추천: 0  ㆍ조회: 700    
IP: 118.xxx.18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2377.22
“ 아버지>>>~~~ ”


  급수차>>>
 
   물차 가뭄에 씨 뿌리고 물을 주지 않으면  밀알은 자라지
   못하고  말라죽어버립니다.
   월남 전쟁터  정글 속에서 푹푹 찌든 날 한 방울의 물이
   꺼져가는 생명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좋은 일 하시던  아버지를 찾습니다.
   아버지는 닌 호아 에서 백마부대  물차를 가지고 다녔다합니다.




아버지 존함 영문 NAM SAN 내무(또는 끝 자가 SUNG 
어머니: NGUYEN  THI  PHIN 
아들 한국이름:NAM SAN 내무 (또는  SUNG
베트남이름:NGUYEN VAN HUNG (1971년생 
아버지신상은 위내용뿐이며 유일한 증거는 아버지 나 어릴 적 
사진뿐입니다. 아들은 배운 게 없어 푸따이 맹호사령부 뒤에 
산속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조선 백마사령부앞 닌호아>>>



 이 여인은 배다른 누나로서  동생의 생부를 찾아달라며 머~언 길

캄란까지 달려와 흐느끼며  아버지 좀 꼭 찾아달라며 울었습니다.
자신은 나짱 에 살고 있지만  어린 자식 학교도 몇 푼 때문에
보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찾아보겠다고 했고 되돌려 보내는데  뒷모습 어두운 그림자 바라보는 우리가  무척 괴로웠습니다.
처음 차비하라고 공금에서 10만동을 주었지만  거리에서 나짱 가는 차기다리는 누나의 뒷모습 너무 괴로웠던지 김 성찬 전우가
개인 돈 10만동을 더 주고  한호성도 덩 따라 10만동을 더 주었습니다.




이 순간을 다 표현 할 수 없지만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 해야만 했습니다.

이세들이 직접한말은 없지만 차라리 베트남 순수 피 줄을 받았던들
차별적 삶은 살지 않았을 것을  못된 한국의 피 줄을 받고 태여 난 것이 뼈저리게 가슴 아프고  분노에 찬 원망을 할 것이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44
작성자 남까페        
작성일 2008-02-26 (화) 00:03
ㆍ추천: 0  ㆍ조회: 745    
IP: 58.xxx.29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2316.22
“ 아버지를찾습니다.. ”


               아버지이름:Park=박씨  (1942년 생
               어머니이름:Tran Thi Bi (1941년생

딸 이름:  Tran Thi Kim Chi (1971.1.20일생
1970년부터 1971년까지 캄란비행장 사진부에서
근무했다고 합니다.

이름은 박氏라는것외 모르며  어머니는 현제캄란에 살고
있으며 딸은 결혼하여 나 짱 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도 영어실력이 능하고 딸 역시 귀엽게 키워 아주 총명하며 예쁘고 고운얼굴입니다.

물론 사는 것도 다른 이세와는 달리 잘 살고 있어  차비주려다 큰 실수 할 번했습니다.
이세중에 자가용 자동차까지 있는 것을 보니 우리마음도 즐거웠습니다.
아버지 박 선생님께서  하늘아래 살아 게시고  딸 소식 들으시면  만나십시오.  밤인데도 딸께서 50km까지 달려온 것을
보면  아버지 정을 무척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박 선생님~~~


 



 

아름다운시절


 



사이에서 태여난 아기시절딸~~~



아빠 빨리오세요 ~~~



어느세 수년세월 흘러가 딸은 이만큼 자라고~~~



옛날의 시~~~



39세의딸 아버지을  찾아주세요~~~


 



 

아버지는 바로 이마크 회사 사진부에서  캄란비행장  미군속으로  근무 했다고합니다. 아버지와 딸이 만나는 기적을 빕니다..




 
  43
작성자 남까페            
작성일 2008-01-29 (화) 11:28
ㆍ추천: 0  ㆍ조회: 1091    
IP: 220.xxx.204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2182.22
“ [라이따이한] 극적인 상봉 - 조김마이와 오빠 제이미 ”

오늘 아침은 참 기분 좋은 날 입니다.
베트남 사이공에서 날아온 극적인 만남이 있었다는 소식 때문입니다.



아마 여러분께서도 기억하실겁니다. 작년에 라이따이한 찾아주기 처음 시작할때

군번줄에 새겨진 주소가 증표가 되어 베트벳에서 라이따이한 이산가족을 찾아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마침 SBS 방송에 사연이 소개될 때 구석에서 흐느끼다가 김성규씨를 붙잡고 자기의 아버지를
찾은 듯 "왜 이제서야 왔느냐?"고 울부짓던 '조김마이'라는 여인을 기억합니다.



파월기술자 조김마이 아버지는 비극적으로 돌아가셨지만 호주로 입양된 오빠를 찾는 사연 이었는데
SBS 방송과 사이공과 호주의 베트벳 전우들이 끈질긴 추적을 하여 작년 가을에 오빠를 찾았으나
서로 문화권이 달라, 호주 부인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오빠 "제이미"의 현명한 해결을 기다려 왔습니다. 우리도 서두르지 않고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키로 하고 호주 이윤화 전우에게 부탁했습니다.


(왼쪽부터, 낳아준 어머니, 오빠 제이미(Jamie), 제이미 부인, 동생 조김마이. 34년만의 만남)

호주 시드니의 이윤화 전우와 퍼스의 전우가 이번일에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조김마이와 제이미가 서로 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그 후론 어떻게 진행 되고 있는지
오리무중에 빠져 사이공 전우들이 섭섭해 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오빠 제이미(Jamie) 부부가 사이공을 방문하여 낳아준 어머니와 친동생 조김마이를 만나
활짝웃는 모습의 사진을 보니 본인들보다 더 조심스러워했던 우리들이 정말 기쁩니다.



조김마이 가족이  베트남 최고명절 구정을 앞두고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만나는데까지는 34년이 걸렸습니다.
오후6시에 베트남어통역, 영어통역을 데리고 사이공의 맥심마트에서 베트벳 전우들과 만났습니다.




이들의 불행했던 과거가 vietvet 역할이 아니였다면 어쩌면 영원히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우리 자신들도 만나는 사람들 못지 않게 반갑지 않으세요? 보람을 느낍니다.

지난해 물심양면으로 많은 성원을 해준 베트벳 전우여러분께 공을 돌리고 싶습니다.



22년전 사이공의 조김마이는 12세 소녀였는데 어머니에게서 오빠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와 함께 오빠를 찾을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였고,

오빠 제이미도 호주방송국과 베트남방송국에  사람을 찾는 광고를 시도했지만 무선시스템부족으로
결국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vietvet에서 노력해 주셔서 고맙다고 두손을 잡고 전우들께 말했답니다.
또한 SBS 관계자께도 고맙다는 안부 전해달라고 했답니다.




왼쪽은 베트남통역 오른쪽은 영어통역입니다. 언어소통이 문제였지만 감정만으로도 통했습니다.




연재 호주 오빠의 아들 OLIVER(9살) 와 딸 CAMILLE(7세) 둘이 있답니다.




사진보셔도 아시겠지만  모두가 행복한 표정으로 변했습니다.
한호성 전우가 사이공의 조김마이와 어머니의 모습을 볼때면  늘 굳은 표정으로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어제는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정말 행복한 얼굴로 변했답니다. 우리가 행복해진 또 한가족을 탄생시켰습니다.




같이 만난 모든이들이 상당히 기분들이 좋았고, 이들과 맥심마트에서 아이쇼핑중 헤여지면서도 보니
행복한 표정들이어서 한호성, 김성찬 전우들도 엔돌핀이 팡팡 돌았답니다.
이글을 쓰고있는 최진사도 매우 즐겁습니다.
제이미 오빠네 부부는 베트남에 며칠 머물다가 호주로 떠날 계획이랍니다.

이로써 해피엔딩 이야기 막을 내립니다. 베트남 소식 / www.namcafe.co.kr
호주 시드니 이윤화 전우님, 호주 퍼스의 김민치 전우님 수고 하셨습니다.




 
  42
작성자 최진사
작성일 2007-12-31 (월) 20:26
ㆍ추천: 0  ㆍ조회: 652    
IP: 220.xxx.123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1960.22
“ 2007 라이따이한...그 어두운 현실 ”

보고 싶지 않겠지만 파월장병들은 꼭 보셔야 되는 동영상 입니다.



▶를 클릭하시고 우측하단 스피커모양 눌러서 볼륨을 올리세요.


[라이따이한, 기억과 기록]

라이따이한...

이 단어는 월남전 참전용사가 들으면 거부감을 일으킵니다.
세상인식은 라이따이한을 파병된 군인들과 결부시켜 말을 합니다.
전우들이 라이따이한은 파월기술자 자녀들이라고 설명을 해봐야
귀에 담아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라이따이한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것은 확실합니다.
국가도 외면하는 이 일에 우리 전우들이 도와 보자고 나서서
2007년 4월 성금 모금이 시작되었고, 우선 그들의 아버지를
찾는일에 8개월동안 활약을 하면서 작은 희망이 보입니다.

2008년은...

지금까지 찾아서 만난 행복한 밝은 부분을 조명하지 않고,
찾지 못하여 어두운 부분에 빛을 비추어 주고 싶습니다.
전우들 자신도 힘든데 얼마나 성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시작하는데 더 의의가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위의 동영상 내용이 다소 왜곡된 부분은 있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면 파월용사들이 알고 있어야 할 부분입니다.
30분 정도로 길지만 꼭 끝까지 보고 같이 이야기를 해 봅시다.
화면에 나오는 故 정주섭(파파정)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2007년12월6일 작고)
.




219.254.244.55 백동기: 잘 보았습니다. 라이따이한에 대하여는 대부분 정부에서 8년동안 파견한 참전군인들에 의해서 생겨난 눈물의 씨앗이라면 그동안 현지 대사나 외교 체넬을 통하여 문제점을 정부측에서 검토하여 특별히 예산을 편성, 송환 또는 보호하는 대책이 있을을것 입니다.문명 국가에서는 대부분 다 그렇게 하는것이 인도적이고요 또 국제적 관례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싶이 그당시 한국군은 엄청 훈련과 규율이 잘되어 있었어서 참전 기간중 6.25때 한국에서 미군들이 보여준 영외 거주라던가 또는 외출 외박이 일체 허락되지를 않아 다행히 라이따이한이 그의 없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만약 있다고 한다면 무시할수있는 수에 불과할것입니다. 그동안 언론에서 거론되어온 라이따이한은 당시 민간차원에서 돈벌러 간 기술자들의 현지 계약된 처에 의하여 생겨난 후손이거나 국교정상화된 이후 상사직원들의 현지처에서 생겨난 문제로 국제관계가 다원화돠고 그로벌화 된 곳에서는 세계 도처에서 다 이런문제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이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다민족화 되고 있는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받아 드려야 될것같고 보다좋은 성장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할 사람들은 씨앗을 책임지? -[12/31-13:04]-
219.254.244.55 백동기: 지 아니하는 그 애비들에게 문제가 있고 마땅히 비난받아야 된다고 보입니다.위글에서도 참전용사들의 거부감에 대하여도 언급하였는데 파월군인에 의하여 탄생된 라이따이한이 있다면 1천명 당 1명 즉 파병 연인원 240,000명 중 240명 정도 보다도 적은 숫자라고 볼수 있었런지? 다만 바람이 있다면 현지에 살고있는 라이따이한들은 아버지로 부터 버림받았다고 의기소침할것이 아니라 씩씩하게 살아주었으면 하는마음 간절할 따름입니다. -[12/31-13:22]-
219.254.244.55 백동기: 오타가 있었네요.참전 연인원이 32만명 이라지요,이곳에서 알려진 참전용사의 자녀인 라이의 아버지인 오하사나 그리고 군목께서 현재까지도 이런 사정을 모르는체 살아있다가 나타난다면 본인은 물론 그 자녀나 참전용사들 모두 반가움을 금치못할것 같습니다. -[12/31-16:18]-
220.75.185.123 최진현: 백동기님 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라이따이한 그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았더니 그들이 원하는것은 아주 순수한 바램이었습니다. 이제 그들도 35~40살 정도니까 자신들도 뿌리가 있다는걸, 자신들도 아버지가 있다는걸, 자신들의 아들딸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아버지를 보고싶어 하는줄 모릅니다. 
故 정주섭씨의 말씀중에 이런말이 가슴에 박히네요. "교회에 백번을 나가면 뭐하고, 절에 백번가서 불공을 드리면 무엇합니까? 자신의 자식을 버려두고 무슨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를 못찾는 이들에게 조금의 위안을 느낄 수 있는 손길이 필요합니다. 2008년에 다시한번 생각해 봅시다. -[12/31-16:52]-
220.75.185.123 최진현: 지난해 정주섭씨를 만났을때 라이따이한에 관한 신상명세서(이력서)철을 보여 주셨는데 전부 약 600명 정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중에 100명에 1명 정도가 군인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군인들은 전술기지 철조망 안에 상주하였기 때문에 자식을 둔다는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는것을 인터뷰 하는 사람들은 왜 모르는지 안타깝습니다. 아버지를 못찾은 2세 3세들에게도 위로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호주의 이윤화 전우님이 캄란의 딸들에게 학비를 도와 주시는 일은 2007년의 빛나는 업적입니다. -[12/31-16:59]-
211.108.49.120 bat29: 지난해에는 라이 따이한 찾아주기 운동을 했는데, 올해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불우한 2세나 3세들을 돕는 운동을 미력하나마 우리들의 힘으로 해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위 인터뷰 중 거부감이 드는 내용도 많지만, 이젠 그러한 것에 초월하여 우리들이 월남전에 참전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들에게 조그만 희망을 주었으면 합니다.
-[12/31-19:00]-
최진현: bat29 전우님께서 의견을 제시하신, 아버지를 못찾은 2세 또는 3세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작은 결연 같은것을 2008년도에 추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008년에는 자신의 능력 한계내에서 마음 편하게 도움을 주실분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12/31-19:38]-
 
  41
작성자 남까페
작성일 2007-12-30 (일) 20:59
ㆍ추천: 0  ㆍ조회: 1048    
IP: 118.xxx.72
http://namcafe.cafe24.com/cafe/?namboard.1959.22
“ 아버지를찾습니다.. ”





No, 14612
◎ 이름: 최진현 (vietvet@korea.com)


◎ 홈페이지: http://vietvet.co.kr

2007/7/11(수)

◎ 조회: 485


[라이따이한] 아직도 찾고싶은 아버지...다시 올립니다.  





베트남 호치민시
대한민국 영사관 영사님 귀하



영사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1969년 4월 26일 베트남 캄란에서 한국인 아버지 이치휘 (Chea Hui Lee)씨와
월남인 어머니 호티신(Ho Thi Xin)씨 사이에서 딸로 태어난 호티김 론 (Ho Thi Kim Loan)입니다.

한국인 아버지 이치휘 씨는 지난 1968년 캄란반도에 위치했던 미국업체인 빈넬(Vinell)에서
근무하셨으며 저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셨고 따라서 본인이 출생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저의 아버지 나이는 25세 정도였으며 1968년에서 1970년까지 빈넬 회사에서 근무하시다가
다낭(Da Nang)으로 옮기신 후 1972년 한국으로 귀국하셨습니다.
어머니와는 1975년 이후 연락이 끊겼으며 어머니는 1951년생이십니다.

저는 생부(生父)를 찾고자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저의 생부역시 지금은 또 다른 가정을 이루고 계실 것으로 생각되어
저의 어머니께선 아버지께 짐이 되기를 원치않고 계십니다.
그러나 저는 꼭 한번만이라도 아버지를 만나 뵙고 싶을 따름입니다.

부디 대한민국 영사관 영사님께서 소생이 아버지를 만나 뵐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리는바 입니다.

이 경우 저의 아버지 소재를 파악 하시는 과정에서도 저의 아버지 지금의 가정사에
하등의 지장이 초래되지 않도록 처리해주실 것을 아울러 애원합니다.

영사님의 도움에 감사드리며 좋은 소식 있기를 고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호티김 론 드림

첨부: 최근 명함판 사진1매   






(번역: 정재성 전우님)




위의 사연은 베트남에 거주하는 김성찬 전우와 한호성 전우님께서 '라이따이한 아버지 찾아주기' 
일환으로 캄란지역에서 발굴한 내용입니다. 아버지 이름 영문표기로 봐서 이재휘/이창희 같기도 하여
빈넬회사에 다녔던 이창희 씨를 찾아냈으나 본인이 아니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관계자 여러분, 힘내시고 다시한번 처음부터 시도해 봅시다. 호주의 이윤화 전우님 수고 많으십니다.




58.186.133.2 김성찬: 오늘도 말없이 뒤에서 후원해 주시는 전우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림니다,오늘 바다건너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세딸들의 아버지와 큰어머님?께서 큰딸의 갑상선수술을 했는지 걱정이되여 딸들과는 대화가되지않아서 저에게 전화하여 딸들을 걱정하시는데 아버지는 당연하겠지만 큰어머님? 이 더 걱정을 하시더군요,세딸들을 대신하여 제가 고맙다는 인사를 드림니다, 우리가 찾고자하는 분 들을 모두를 찾을수는 없겠지만 찾을수있을때까지 전우여러분들의 협조하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sai gon 에서.9988 -[07/11-21:31]-


58.186.133.2 김성찬: 요즘 몇일째 한전우 컴퓨터가 또 말썽이네요,adsl도 말썽인데 바이러스 까지 잡수셨다나요,컴퓨터가 말썽이많아 사는게 재미도없고 죽을맛이라더군요!!!...... -[07/11-23:56]-


124.184.121.235 pat430: 호티 킴론양의 아버지 찾기를 다시 시도하겠습니다 . 이곳 호주에 많은 사람들이 파월당시의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 가까운 관계의 전우 ? 아니면 기술자들이 주고받는 말들을 전해듯고 있습니다 . 남자들이 외지에서(젊은 나이) 혼자 생활했겠습니까 ????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 그렇다고 아버지를 찾는 사정을 보고서 모른체할수는 없고해서 고민들을 하는것 같습니다. 하여튼 김성찬 한호성 서울의 최진현전우님 계속하십시다.. 저도 열심히 하렵니다... 김전우님 큰따님의 수술이 잘되었다니 다행입니다 . 그분들 정말 하느님의 은혜를 받으신 분들 같아요. 어머니가 더 훌륭하시다니까요......==호주에서== -[07/12-07:37]-


124.184.121.235 pat430: 김성찬선배님의 댓글을 올립니다. 한호성전우에게 전해주세요... 요즘 우리들 나이에 재미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컴퓨터가 고장이면 고치면 될일이고, 요즘 호지민의 거리에 꽁까이들의 오트바이 행렬을 보고 . 그리고 나짱의 해변에 비키니 아가씨들이 지천에 깔렸는데... 욕심을 버리라고 하시지요 ... 하여튼 다시 시작하시지요... 캄란의 길영국씨 손녀들 학비는 8월 초에 송금한다고 전해주십시요==호주 할배가 올렸습니다== ++요즘 식당에 가면 할배 이쪽으로 앉으세요 하네요++ -[07/12-07:50]-


최진현: 사이공 소식이 잠잠해지면 혹시 몸이 불편하여 눕지나 않았는지 그런 걱정이 앞섭니다. 김성찬님께서 한호성 전우의 근황을 알려주시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호주의 이윤화 전우님, B씨의 3딸 큰어머님?이라고 해서 좀 햇깔렸는데...세상엔 참 마음씨가 넓으신 분들이 많은가봐요. 으젓한 큰딸이 목에 혹이 생겨 고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안타까웠는데 큰어머님 가족의 도움으로 수술을 잘 끝내고 회복중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으니 참 흐뭇해 집니다. 호주의 이윤화 전우님 후한 마음쓰심에 감사드리며 위의 호티킴론양의 소원도 한번 풀어줍시다. 이치휘/이지회/이재휘 여러방면으로 수소문 해 봅시다. 미국회사 빈넬에 근무하셨던 분들이 협력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현재 가정사에 곤란이 있다면 아버지께서 가족몰래 딸에게 전화라도 한통화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계속 찾고 있기때문에 나중에 메스콤 추적으로 방영이라도 된다면 덮어둘 수도 없게 됩니다. 피한다고 뭍혀 지는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07/12-08:21]-


222.253.0.237 베트남 캠프: 비슷한 이름 들을 동시에 알아 보아야 겠습니다 ! -[07/13-01:59]-



 
이름아이콘 남까페
2007-12-30 21:05
찾는다는소식에  잠시옮겨다놓았습니다...
베트벳게시판15페이지 14612에있습니다.
ho thi kim loan   (영사관에  아버지찾아달라고 사연 띄운 이세딸...
   
 
12345678910
This site utilises the Macromedia Flash Plug-in the best suited in size of 1152*864